수필가로 활동하면서 성당 생활이나 내 신앙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글이 수필전문지에 실린 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글의 배경’ 일뿐이었다. 삶의 곳곳에서 받은 은총을 이야기하기에는 수필지는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체에 발표되는 글은 작가만이 것이 아닌 독자와 편집자의 것이기도 하기에,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짓는 것은 독자에 대한 작가의 배려이자 역할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그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흘러넘치면 상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지지만, 하느님에 대한 마음은 수필에서 어느 정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세례를 받았을 즈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文人)이자 가톨릭 신자인 여러 작가들이 서울교구 주보에 묵상글을 연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오길 꿈꿨다. 하지만 그들에 비하면 나는 너무 젊었으며 갓 글을 쓰기 시작한 새내기일 뿐이었다. 나이가 더 들고, 언제일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글이 조금이라도 알려진다면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꿈을 꿨다. 그러나 너무나 커다란 꿈이라 누구에게도 차마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마음속 깊은 주머니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오랜만에 그 마음을 다시 꺼내 하느님께 살며시 보여드렸다. 과분하고 막연한 꿈이지만, 언제 한 번은 그런 기회가 제게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마음껏 당신이 내게 주신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어요,라고.
그리고 며칠 후,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바로 경향잡지의 기자님이 보낸 메일이었다. 신앙에 대해 적은 내 글을 온라인에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경향잡지에 네 달 동안 연재가 가능하겠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당연히 가능하다 답을 했고, 새해가 되어 공식적인 원고청탁서가 도착했다. 원고청탁서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간 많은 청탁서를 받았지만 이토록 감격스러운 원고청탁서는 처음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과 속도로 내 기도에 대해 답을 주신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과 감사, 그리고 놀라운 마음. 경외심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그동안 적지 않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꽤 했다. 나뭇가지가 가득한 산길을 걷다가 온몸에 생채기가 가득하기도 했으며, 저 멀리 보이는 목표점을 두고 되돌아서서 출발지로 다시 향했던 적도 있다. 그 순간마다 부족한 내 능력을 탓하며 절망했다. 그러나 거친 나뭇가지도,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그 길도 돌이켜보면 모두 하느님의 사랑이었다. “하느님은 나를 무엇으로 만들지 알고 이미 알고 계시니 그것에 대해 걱정할 것은 없다”던 나의 성녀, 에디트슈타인의 말에 그래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내 아둔한 머리에 하느님의 큰 뜻을 담기엔 나는 작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깨닫는다. 그분은 때로는 어렵게, 때로는 이번 일처럼 뜻밖의 방법으로 너무나 놀랍게 나를 나로서 만들어가신다.
그분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순간을 하나로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매 순간 나와 함께 하셨고 선(善)으로 늘 이끄셨다. 그러니 고백할 수밖에. 그는 나의 기쁨이며 희망이라고.
'잔잔'은 가톨릭 신자 혹은 사제, 수도자이면서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모인 커뮤니티입니다.
매달 신앙과 관련된 공통의 주제를 갖고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사진과 조각, 그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발표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방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