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글의 힘
학교 내 걸린 한강 작가의 얼굴
인류학 석사를 끝내고 일본 유학 준비를 할 때였나.
알고 지내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5.18 관련 사진자료나 기사자료들을 사회과학도서관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데이터 관련한 키워드나 제목 같은 메타정보도 상세히 입력해야 해서 나는 거의 반년 간 엄청 열심히 5.18 관련 자료들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알았던 5.18은 교과서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보는
아주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었다. 80년 5월에 어머니는 만삭이었고 혹여라도 나를 낳기 전에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하며 80년 5월을 보냈다는 정도.
그런데 내 눈으로 확인했던 5.18 관련 사진들은 그런 '3자의 경험'으로 치부될 일이 아니었다. 체육관 같은 곳에 줄 지어있던 나무관과 피자국이 남아있던 시민군들의 악보와 전단지. 도로에 엎드린 사람들을 군발로 차는 군인들과 총알 때문에 무수히 구멍이 뚫린 벽. 그리고 몇몇 가톨릭 신부님들이 급박하게 남긴 서신까지. 그야말로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회의에서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었는데, 나는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왜 어머니가 날 낳기 전에 전쟁이 날까 걱정을 했는지 알게 됐다고.
엄마는 한승원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다. 유려하게 흐르는 그의 문장이 참 아름답다고 했었다. 나는 한강 작가의 글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는..... ㅠ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였다.
나를 한강 작가와 감히 비할 수는 없으나 나 역시 그처럼 문장으로 나를 드러내고 표현한다는 사실에, 수필이든 논문이든 글을 쓰는 인간으로서 괜한 동질감과 기쁨과 각오를 느낀다. 그리고 아주 슬쩍이지만 같은 동문으로 묶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누군가가 한강의 작품을 논하면서, 한강의 글은 힘들다고, 아름답고 행복한 글만 읽고 싶다는 소리를 했던데 미안하게도 예술은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그런 것만 써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고흐와 피카소와 베토벤과 브람스와 쇼팽과 이상과 윤흥길과 최인훈, 그리고 그 외의 위대한 작가들이 남긴 건 뭐였을까. 왜 영화 기생충은 우리에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까.
예술에는 인간과 세상이 담겨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리고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누군가가 내 글을 집중해서 읽어준다는 건, 어쨌든 내가 권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내 부족한 글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곳곳에 살고 있는, 자신의 언어를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거나 도중에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분에 넘치게도 글이라는 권력을 가진 내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자 최종적 목표이다. 나 역시 권력을 갖지 못한 자가 되기도 하니 이 꿈은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덧.
5.18이 있고 나서 수십 년이 흘렀는데, 왜 우리는 아이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담겨 줄지어 있는 관을 자꾸만 보아야 하는 것인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