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복은 지가 타고난다.
마흔 하고도 아홉!
아직 어른이 못된 것 같은데 건너뛰고 어린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난임으로 고생하며 어렵게 낳은 큰딸도 내년이면 고3이고,
얼떨결에 생긴 둘째도 벌써 중3이다.
엄마손 안 가도 야무지게 잘 크는 딸들이라 학원비만 내면 큰 걱정 없는 감사한 상황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 아빠들이 안고, 업고 다니는 아기들의 달랑거리는 발만 봐도 너무 이뻐서
한참을 바라보며 아기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이유 없이 웃으며 아무 표정이나 짓는 미친 여자가 된다.
그렇게나 아기가 이쁘다.
우리 큰딸도 주변에 아기를 볼 일이 없다며 자기가 가장 빠른 거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5살 어린 여동생이 임신소식을 알려왔다.
둘째와 띠동갑 나는 셋째!
44살! 이제야 애들 다 키워놓았는데, reset -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니...
경제적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저녁에 남편과 술도 한잔씩 하고,
두통약도 맘 놓고 먹고,
다이어트한다고 한약도 좀 먹었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임신을 확인한 4주 차부터 6주 때까지 매일을 울면서 지냈다고 한다.
건강하게 낳을 자신이 없어서,
아이가 클 때까지 경제활동을 할 자신이 없어서,
이제야 좀 자유로워졌는데 다시 육아를 할 자신이 없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임을 했는데도 생긴 그 대단한 녀석이 궁금하다.
의외로 양가 부모님들 모두 너무 기뻐해 주시고.
큰애와 둘째도 별 거부감 없이 인정해주고.
4촌인 우리 식구들도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기대하고 있다.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몽을 한 번도 안 꿨다.
아이들은 내심 굉장한(?) 태몽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나에게 물어보는데,
꾸며낼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그런데 이번에 동생이 예쁜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하얀색 비둘기가 청색 실과 금색실로 수놓아진 조끼를 입고 동생에게 날아왔는데,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큰언니처럼 의지하는 수녀님께 기도를 부탁드리며 말씀드렸더니
성모님의 색상이라며 건강하고 예쁘게 잘 낳으라고 하셨다고 한다.
피임도 이겨내고, 안 꾸던 태몽도 꾸고, 아기집마저도 동그랗게 예쁜 아이를 두고
무슨 나쁜 생각을 했는지 살짝 미안해지기도 했다고...
제부는 막중한 책임감과 현타 속에서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깐 고민했었다고 한다.
무슨 그런 나쁜 생각을 하냐고 타박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고민이다.
만약 내가 늦둥이를 임신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무거워지고 덜컥 겁도 났다.
산모라고 하기엔 조금 늙은 동생과 조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많이 사랑해주고, 함께 키워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아닐까 싶다.
나도 경제력을 가진 조카바보가 되어보도록 노력 좀 해야겠다.
먹고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때에 늦둥이를 임신한 여동생에게
무책임하지만 예전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애기들은 다 지 복을 갖고 태어나니까 걱정하지 마"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지만 참 위안이 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