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면........
걷고 또 걷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사그라 들기도 하고
때론 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억울하고 외로운 마음이 불쑥 올라와 길 위에 툭 튀어 나온 돌처럼 내 발을 걸고 넘어지기도 한다.
미세먼지와 자외선 지수가 매우 높은 지금보다는 예전에 산책을 정말 많이 했었다.
내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유예기간을 갖는 것이 조금은 타당해 보이지 않을까 싶어 오랫동안 머뭇거리며 언론사 시험을 보러 다녔던 때. 당연히 다 떨어지고 중랑천을 따라 끝없이 걷고 피곤에 쩔어 곯아 떨어졌을 때.
초코, 사랑이, 아지와 함께 산길을 걸으며 말도 안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답답한 마음을 괴상한 소리 지르는 것으로 대신하며 걷고 또 걷고 다시 또 집으로 돌아오던 길.
걷고 있으면 내 두 발로 나를 지나쳐 간다는 생각이 든다. 또 동시에 내 자신을 다시 되새김질 하고 주변에 보이는 꽃들과 누군가 버린 커피 컵과 다정한 연인의 속삭임들 사이에서 그저 여러 사람 중에 하나로 다를 것 없이 살아가고 있구나, 란 생각도 든다. 사실 걷고 있으면 가장 좋은 것은 나를 갉아 먹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집에 빨리 가고 싶기도 하고. 지나가는 풍경만큼 그런 생각들도 그저 지나쳐간다.
걷다 보면 사실 묵혀 두었던 이야기와 글들이 생각난다. 날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내가 클릭하고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나의 마지막 글쓰기 선생님은 많이 걸으라고 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많이 걷는다. 글을 써서 뭐하나, 가장 큰 재능인 '열정'이 사그라 든 것 같은 느낌일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많이 걸으라는 말씀이었다. 걸어야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고까지 어떤 작가는 주장했다.
어쩌다 알게 된 스페인 친구는 번역을 하고 기사를 썼다. 어렸을 떄부터 항상 외국에 가서 살겠다고 했고 쓰나미를 겪은 일본을 뉴스로 접한 뒤 바로 친구와 일본에 가서 쓰나미 후의 기록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오게 되었고. 그 친구는 항상 회사가 끝난 후 집 앞에 작은 공원을 걷고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 불편한 감정, 등등을 걸으며 털어내고 집으로 간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지혜를 참 일찍 터득했다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산책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들이 그 풍경과 함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같이 산책 한다는 것은 내게는 특히나 로맨틱하고 철학적으로 들린다. 만약에 사랑하고 싶은 상대가 나타나면 커피를 사이에 두고 카페에 가는 것도 좋겠지만 고즈넉한 길에 여름 밤 산책을 하자고 하고 싶다. (물론 이것은 판타지라는 걸 안다.) 서로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지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나와 내가 서로 박자를 맞추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나보다. 홀로 긴 산책을 해본 지도 오래다. 그 오랫동안의 시간에 난 나의 마음 어딘가와 좀 많이 멀어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