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등을 밀어주며 나아가게 한 그들

나의 짐들

by moonbow

나의 짐들은 지금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컴퓨터를 밟고 지나가고 내 등을 밟고 뛰어다니고 있다.

방금 전 닦은 방 바닥에 모래를 뿌리고 컴퓨터만 하고 있는 나를 모니터 바로 뒤에서 염탐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다. 고양이 세 마리의 집사가 되었다.

사는 게 팍팍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고양이때문에 돈이 많이 들지 않냐고.

굉장히 많이 들지 않는다. 당연히 혼자 사는 것보다 돈이 더 나간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고 다행히 건강하기때문에 큰 돈이 들지 않지만 다양한 장난감과 멋진 캣타워를 보면

매우 가난한 집에서 크고 있는 아이들같아 가끔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나만 바라본다. 사실 나만 안본다. 잠을 많이 자고 창 밖을 더 많이 보고 그냥 명상처럼 눈감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강아지처럼 사생활도없이 나만 쳐다보는 건 아니라 그냥 같이 살고 느낌이다. 이것이 고양이의 매력일까. 고양이들이 집에서 기다리지 않을 때는 언제나 집에 가는 발걸음이 빨라지진 않았다. 어두운 집으로 들어갈 때, 손을 더듬어 불을 켤 때, 아무도 없다는 것을 괜시리 확인하고 털썩 앉거나 누워버리는 것이 일과였다. 아니면 집에 걸어가는 그 몇 분동안 전화할 사람을 찾아 괜시리 핸드폰 목록을 뒤지거나.


하지만 고양이들을 모시고 나서는 괜시리 집에 가는 걸음이 빨라진다. 시간이애매하면 만날 사람을 괜히 찾곤 하던 어정쩡함도 없어졌다. 버스 안에서 몇 시간 전에도 본 그 털이 가득한 얼굴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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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만 있을 때에는 각자의 장소에서 고양이 생활을 즐기는 아이들을 찾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행동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냥 혼자 있을 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아 목이 아주 잠겼을 텐데. 그래서 전화오는 사람마다 나에게 잤냐고 물어봤을텐데. 고양이한테 말을 하고 또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마음에 아무리 무거운 짐이 있어도 고양이의 자는 모습은 뭔가 마약처럼 현실을 잊고 기분을 좋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 편안하고 자신만의 잠에 빠져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뭐 이렇게 연연하며 힘들게 살 필요가 있나 싶어 고양이 털을 빗고 눈곱을 떼어주고 뱃살을 만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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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표정이지만 관심이 있다.


이렇게 세 마리나 기르는 집사가 된 건 사연이 길긴 하지만 구조하고 임시 보호 하고 입양을 다 못 보내서(사실은 정이 들어서) 키우게 되었다. 고양이가 한 마리가 아닌 이상 난 경제력있는 집사가 되어야했고 구조해서 임시보호했던 두 마리의 남매는 꼭 껴안고 자서 나머지 하나를 떼어놓기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세 마리 고양이의 집사가 된 겨울 나는 닥치는대로 과외를 하고 졸업작품을 쓰면서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나가고 있었다. 일을 많이 하고 들어와도 얘네 얼굴을 보면 자는 얼굴도 뭔가 명상을 하는 것 같아 약간 삶에 있어서 무심한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거느려야 하는 식구들이고 지금은 어리고 건강하여 싼 사료를 먹어도 탈도 없고 서로 사이좋게 잘 놀고 하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는데 앞으로는 병원에 가거나 케어를 더 해주려면 돈을 더 많이 버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하루에 세 번 과외를 하고 먼 거리를 이동해도 집에 가도 힘들기는 해도 뭔가 맨바닥에 그냥 슬라이딩하는 느낌보다는 폭신하게 고양이 털이 위로 착지하듯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는 6시에 퇴근을 해도 딱히 약속을 만들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서도 직장에서의 환영과 환청이 들리듯 밖의 일을 다 털어내고 들어오지 못 했다. 물론 100퍼센트 안과 밖이 구별되기는 힘들겠지만 집에서 어느 정도 낮의 일을 망각하고 쉼을 취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다음 날을 맞이할 준비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집에 가서도 밖에서의 속상한 일이 내 발목을 잡고 늘어 질 때 고양이들의 태평한 얼굴을 보자면 다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방을 닦는 내 손을 장난감삼아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며 잡으려고 용쓰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번 아웃과 사람들에게 치여 지쳐서 칩거 생활을 할 때도 고양이들은 같이 오랜 잠을 자고 내가 일어나면 자기들도 괜히 신나 뛰어다니기도 한다.


나의 짐, 혹들은 나에게 청소할 털들을 숙제처럼 주고 이사를 걱정할 때는 짐이 되며 동시에 또다른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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