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죽였어
우연히 <성질 죽이기> 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은 착하고 할 말을 못하는 성실하기만 한 남자다.
하지만 이 남자는 어이없이 비행기에서 성질을 못 참는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고
심리 치료 권고를 받게 된다.
(잭 니콜슨) 박사님은 이상한 방법을 시도하는 개성강한 분이다.
애덤 샌들러는 박사님 때문에 더 더 성질이 나기 시작한다. 각종 성질 돋구는 일을 박사님이 하지만 성질을 낼 수록 치료기간은 더 길어진다. 게다가 박사의 권고대로 여자친구에게 의도치 않게 시간을 갖자고 하다가 여자친구를 뺏긴다. 그것도 잭 니콜슨 박사님에게.
이래도 참을 것인가?
게다가 5년 동안 품워왔던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위한 야구장 프로포즈를 박사님에게 이야기했다가 그 마저도 박사님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애덤 샌들러는 뛴다, 달린다. 이것마저는 빼앗길 수 없다. 몇 년이고 부려먹기만 하고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친구이자 사장에게 막나가고 약속한 대우를 이행해주지 않으면 그만둔다고 한다. 사장은 어안벙벙. 그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분노의 달리기로 야구장에 도착하고 우여곡절끝에 야구장 한 가운데에서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전광판에는 박사님이 특별히 축복하는 둘의 사랑을 축복하는 문구가 보인다. 여자친구는 감격하며 "사람들 있는 곳에서 키스해도 돼!"라며 프로포즈를 받아준다.
2002한일 월드컵 때의 영화라 줄거리를 거의 공개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순둥이처럼 화도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다 빼앗겨버리는 주인공이 폭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알려준다. 성질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를 낼 때 화를 내야 한다고 알려준다.
다음은 장- 마르크가 화를 내지 않았을 때의 단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1. 상대방은 나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자유를 갖는다.
2. 종종 원한에 사로잡혀 화를 곱씹는다.
3. 굴복으로 비춰진다.
엄마 아빠와 밥을 먹다가 치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인이 화를 전혀 내지 않는 성격인데 불쑥 불쑥 화를 그렇게 많이 낸다고 해서 병원가서 검사받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고 했다. 평생 화를 잘 안냈던 분이라는데. 그러면서 엄마는 이야기한다.
"생전 화를 내지 않던 사람이 치매가 오면 호랑이처럼 화내는 치매가 오고 성질부리고 못됐던 사람은 조신한 치매가 오더라."
"그러니까 참 이상해." 라며 아빠도 거들었다.
의학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찾아보지는 않았지만) 평소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 퇴행과 함께 드러나나보다.
나도 은근히 욱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주변에 강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내가 순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정말 '뚜껑이 열린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라는 말 그대로의 느낌을 경험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화를 참고 그 순간에 화를 내지 못하니까 나중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원한을 쌓는다. 참고 잊어버리면 좋으련만 그 순간의 싸움과 분위기를 생각해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 것이다. 이러다보니까 어느 순간 화내야 되어야 할 순간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화도 전혀 나지 않는다. 마음 안에서 봉인된것이다. 영원히 봉인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한 방울의 물이 찰랑거리는 물컵의 물을 흐르게 하는 것처럼 나중엔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게 한다.
그런 순간에는 나도 내가 싫을 정도로 흥분하게 되고 상황보다 더 심하게 화를 낸다. 직선적으로 화를 내지 않아 시니컬하게 비꼬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집에 와서 계속 나를 탓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순간에 정당히 화를 내도 되는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화가 날 때 표현을 하면 그 상황의 문맥은 다 떼내어 버리고 화를 내고 욕을 했더라, 이런 말만 돌아서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곤 했던 경험도 종종있다. 그 때는 그것도 너무나 억울했고 욕했다는 사실만으로 색안경을 쓰고 예단해버리니 이 사회 또한 화를 내는 것에 억압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실감했다.
화를 참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다, 라고 하는 격언이 많은데 나는 참아서 이를 승화시킬 수 있는 성인이 되려면 수양이 더 필요하니 일단 화를 제 때 내는 방법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화를 참아서 오히려 나중에 마구 폭발하여 인간관계를 끊어버리고 친구나 연인간에 연이 다 해서 헤어질 때 묵혀놓은 화를 다 끌어 모아 폭탄투하하고 또 나중에 자책하고 자괴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잘 헤어지려면 같이 하는 시간 동안에 잘 싸우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같다. 하지만 여전히 실행은 어렵다.
이럴 때 화를 내도 되는걸까?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별별 경우를 다 겪다보니 저런 고민을 하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화가 났다고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치만 대체 언제 내지?
아직은 무섭다. 하지만 비꼬거나 입을 다무는 것보다 감정에 솔직한 것이 필요하다.
우선은 내가 그 감정을 빨리 느끼도록 봉인된 감각들을 열어두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