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끝나지 않는 대화

by moonbow

항상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항상 대화를 하고 있었다.


타인과의 대화가 아니라도 난 항상 대화를 하고 있다. 어느 순간 일방적이 되어 버리고 막혀버리고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a: 배가 아파. 살이 쪘나봐. 허리도 아파.

b: 넌 매일 아프대. 그래서 어디 계속 살겠니?

a: 살 빠진 줄 착각하고 살았는데 오히려 더 쪘네. 나혼자 착각하고 살았나봐.

b: 그래, 이 돼지야. 네가 그런 고무줄 바지만 입고 못 입는 옷 쌓아만 놓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

나봐?

a: 그래도 폭식도 덜하고 예전보다는 더 많이 움직이는데?

b: 넌 그 정도가지고 살이 빠질 몸둥이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카푸치노 한 잔, 사탕 하나도 억제하고 참아야 겨우 '뚱뚱하진 않아.' 정도 얘기 들을 수 있는 수준이잖아.

a: 그게 다 넌덜머리나서 놔버린 거잖아. 그렇게 계속 매 순간 뭐라고 하고 그러니까.

b: 에휴 말을 말자.

a: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야.

b: 포기 했으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이젠 사람들이 돼지라고 해도 아무 느낌없지?

a: 그렇긴 해. 예전엔 오히려 애매했으니까 살만 조금만 빼고 피부관리하면 예쁘겠는데 왜 안꾸미고 왜 안빼? 이런 말 했거든. 그때는 정말 열받아서 씩씩대고 욕하다가 살 빼다가 그 말 한 사람때문에 빼는 것 같아서 또 뭔가 마음에 안들고. 또 열심히 살 뺐는데 아무도 내가 살 빠졌는 지 안알아주면 시무룩해하고 그랬었어. 그리고 한참 헬스장에 몇 백씩 내고 PT받고 내 몸가지고 이리 뜯고 저리뜯고 뭐라고 해도 수긍해야만 하고 운동 억지로 했을 때 있잖아. 먹은 거 다 사진으로 찍고. 매주 인바디 찍고.

b: 그래서 체형이 바뀌고 옷 입는 거도 좀 편해졌지.

a: 근데 그 땐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

b: 목표가 너무 높아서 그런거 아냐?

a: 그것도 있겠지만. 30대가 되면 무슨 큰 일날 것처럼 이런 옷은 30대가 되면 못 입겠지라며 특이하고 야한옷도 사고 입고 그랬잖아. 결국 볼 사람들은 직장에 아저씨들인데. 그 사람들 보라고 입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 때는 더 불편하고 불행하고. 물론 예쁘긴 했지. 근데 이렇게 까지 노력하는 데도 남자친구도 안생기고 좋은 일도 안생긴단 생각에 더 우울하고 힘들었어.

b: 힘들어도 만족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a: 너 때문이잖아.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건강하고 살이 찌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런 나보고도 계속 뭐라고 했어.

b: 그래 봤자, 안뚱뚱한거라고. 근데 이것도 내가 만든 이야기는 아니야. 네가 누구한테서 듣고 입력해서 그런 거지.

a: 그럼 내 탓이야?

b: 그래. 그리고 이런 대화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놓치고 당당해하지도 못하고 그런 거 잖아. 더 못난이같이 굴고.

a: 내가 안 뚱뚱하고 예뻤다면 그 사람과도 잘 됐을까?

b: 결국 헤어졌어도 사귀긴 했을 지도 모르지. 인생의 단 맛은 경험했을지도.

a: 내가 망친걸까.

b: 꼭 그렇진 않지만 그렇기도 하지.

a: 너는 나랑 가장 오랫동안 있었는데 왜 이렇게 괴롭게 해?

b: 너야 말로 계속 똑같은 이야기하고 왜 날 괴롭게 만드니?

a: 원래 기억이 안 날 어린 시절부터 괴로웠던 것 같아. 괴로워야지 마음이 편한 것도 있어.

b: 그래. 거기에 중독되어 있지. 게다가 의심이 많아서 좋은 얘기를 하면 믿지 않잖아.

a: 믿었다가 어떻게 됐는 줄 알아? 발등찍히고 상처받아서 울고. 또 너가 해이해져서 대충 살고 열심히 안하고 말이야.

b: 휴. 우리 관계가 이러니 뭐가 생기려고 해도 그 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있겠어? 피곤하기만 하지.

a: 그래. 나 피곤한 사람이야. 너도 피곤하게 하고. 이런 피곤한 내가 싫으면 관두라 그래.

b: 그래. 그래서 너 포기해서 괜찮은 척 남자한테 관신없는 척 그러는 거잖아.

a: 그것도 있는데 네가 길거리 다닐 때마다 나 초등학교 때보다 더 마르고 작고 날씬한 애들보면 '나같아도 나보다 저런 애들 사귀겠다.'이렇게 말하잖아.

b: 어떻게 말을 안할 수도 없잖아. 그러면 외모를 포기했으면 다른 건 열심히 했어?

a: 왜 또 계속 공격인데. 너무 피곤해. 응 다 못 했어. 신경쓸 게 너무 많고 또 글도 못 쓰고

그걸로 충족도 안되고. 연애를 해도 상처받고 '나'는 없는 연애를 해서 이젠 다 지긋지긋해. 하지만 또 사랑을 갈구하는 너가, 내가 넌덜머리나. 너무 피로해. 근데 또 갈구하니까 커피마시고 쿠키먹고 초콜릿 입에 넣고 작은 거 하나라도 입에 넣으려고 편의점을 집들르듯이 하고. 그래, 그래서 돈이 쌓인게 아니라 지방이 쌓였어. 내 지방은 다 내 괴로움과 외로움이야.

b: 야. 그렇게 까지 네가 땅을 파고 들어가니까 내가 할 말이 없잖아.

a: 그런 말하지마. 그거 친구가 나한테 한 말이잖아. 그리고 그 말 하면 멀어져 가고.

b: 노답이다. 노답이야.

a: 그것도 내가 들었을 때 기분 나쁜 말이었어. 그러는 지는?



(수십번의 폭풍과 수백번의 싸움, 지겹도록 이어진 장마.)



(그 후 )



b: 그냥 넌 좀 아픈 거 아닐까?

a: 왜 그래? 불안하게?

b: 매일 밤 한 웅큼의 약을 먹고 자야 하는데 아주 건강하고 활동적이고 큰 어려움도 없고 천성이 밝은 사람이랑 비교하는 건 너무 불리한 거 아닐까?

a: 왠 일이야?

b: 아니, 그렇잖아. 내가 너라는 걸. 너가 나라는 걸 인식하고 이렇게 싸워온 날을 세어보면 가장 오랫동안, 가장 오래된 친구인데. 이런 대화만 하다보니 결국 우리가 우릴 코너로 몰아.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게 되었잖아. 미안해.

a: 그렇네. 우리가 가장 오래 된 친구였네. 난 미안하다고 말 안할래. 너무 사랑해서 그런것 같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b: 그래. 남들한테는 그렇게 배려하고 널 무시할 정도로 그 배려를 당연히 여겨도 착한아이 컴플렉스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그러더니. 나한테도 다정하게 해줘.

a: 응. 이젠 우리만 잘 살고 싶어. 우리가 제일 최우선이야.

b: 맘에 든다. 이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기적이란 생각 안들지?

a: 응. 그게 당연한 거더라고. 희생적이고 봉사정신은 있고(실제 봉사활동은 잘 안하지만) 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내가 마음이 고와서야. 하지만 나부터 지켜야 결국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사람들이 다치지 않더라고.

b: 그래. 너 한참 일 잘 안풀리고 알바도 하나도 못 구할 때 가족들이 너무 걱정한 거 알지?

a: 응. 난 그냥 집에 내려가고 싶어서 가겠다고 했는데, 사실 아빠가 걱정돼서 내려오라고도 했고. 기분전환하라고.

b: 그래. 넌 뭐 안되거나 뭐 하면 그것만 질리게 붙잡고 있잖아.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면서.

a: 맞아. 뭐 하러 그런담? 그래서 내려간다고 했더니 엄마가 흠칫 놀라시더라고. 오빠도 그럴까봐 걱정하고. 내가 응급실도 실려가고 식음전폐해서 병원 입원하고 그랬어서 가족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 같았어.

b: 그래서 또 자책했니?

a: 아니. 자책은 안했는데 자주 연락하고 이젠 그 극단까진 안가고 낙법해서 넘어질거라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뭐 정확히 얘기는 안했지만 내가 날 잘 보살피면 그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b: 그래.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a: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

b: 그래. 그치만 언제 또 우리가 사이나쁜 샴쌍둥이처럼 서로 욕만하다가 스스로 같이 난파할 수도 있으니 너무 휘몰아치게 바쁘고 정신없어져도 서로 이야기 하는 걸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a: 그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질 죽이기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