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 1

몸 밖에

by moonbow


여자란 자궁이고, 난소이다. 여자는 한 마리의 암컷이며, 이 암컷이라는 말로 여자의 정체는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암컷’이라는 말이 멸시하는 뜻이 되는 것은, 그것이 여자를 자연현상에 있게 놓아두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를 섹스 속으로 몰고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는 동물의 경우에도 그 성이 남성의 눈에 중요한 경멸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여성이 남성의 마음속에 불안한 적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은 이런 감정이 생기는 까닭을 오히려 생물학 속에서 찾응려고 한다. 암컷이라는 말은 남자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의 회오리를 일으킨다. 커다란 둥근 난자가 민첩한 정자를 사로잡아 거세하는 광경이나, 배가 터지게 먹은 괴물 같은 흰 여왕개미가 노예가 된 수컷에게 군림하는 광경, 사랑을 만끽한 버마재비나 거미의 암컷이 수컷을 물어죽이고 멀어버리는 광경(...) 무기력하고, 방자하고, 교활하고, 우매하고, 냉담하고, 응탐하고, 잔인하고, 비굴한 모든 암컷을 남자는 한꺼번에 여자의 속성 속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사실 여자는 하나의 암컷이다. - 제2의 성, 시몬느 보부아르

“미스코리아 해도 되겠어.”


이 말을 어렸을 때 종종 들었다. 내가 한글도 모르던 5살, 또는 그 이하의 나이여서부터였을 거다.

그냥 클리세로 어린 여자아이에게 하는 칭찬이었고 지금은 잘 하지 않는 말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 그 말은

꽤 내게 크게 다가왔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리면 꼭 시청하면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는 신체 사이즈를 폭탄머리를 한 언니들 사이사이로 외워가며 누가 누가 미스코리아 진이 될 것인가 를 가족과 함께 점치곤 했다. 이를 보는 시선은 아빠와 오빠의 것과 나의 시선이 퍽이나 달랐던 것 같다. 결국 진과 선을 가르는 부분에서 우리는 내기를 하듯 점치곤 했다. 이런 내기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같이 시청하면서도 종종 하는 일이지만 그 당시의 미스코리아 후보 언니들을 보는 나와 지금의 나는 매우 달라졌을 뿐이다. 게다가 미스코리아 등, 수퍼모델 대회는 공중파 방송에서 금지되었고 탈코르셋과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뜨겁게 달구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를 보면서도 어렸을 땐 나는 자못 진지하게 질문하였다.

왜 미스터코리아는 없는가?

하지만 곧 알게 된 사실은 미스터코리아는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자를 뽑는 대회이기때문에 나는 그 어떤 즐거움(?)도 얻지 못 했다.

주로 내 어린 시절은 ‘키가 큰 아이’로 인식되어 왔다. 키가 크고 일찍 성숙해버린 몸 때문에 선생님들이나 남자아이들에게 성희롱을 일찍부터 당했던 어린시절이 너무 빨리 분노의 시절로 돌변해버렸다. 일단 ‘키가 큰 아이’였기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때 키 순서대로 줄을 섰는데 내 앞에 있던 아이가 나보다 머리 크기 하나가 없었다) 금새 나는 유명해졌다. 그리고 내가 멍청해서 꿀었다(유급당했다)라든지, 비정상이라든지, 외계인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난 곧 공부와 파워(힘 그 자체로) 그런 놀림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놀리는 것은 약한 자와 할 일없는 남자들의 카르텔이자 취미였다. 그리고 종종 손이 커서 종이접기를 못한다든지, 여리고 약하고 하얀 피부로 인기를 끌었던 아이가 유독 내게 옆에 붙어 팔뚝이나 팔목을 비교해보자고 하는 허튼 짓들은 계속되었다.

이 때부터 ‘나의 몸’ 자체에 대한 인식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가득찼고 신체를 쳐다보는 시선에 특히나 민감해졌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브래지어에 관한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신체검사를 했다. 신체검사를 하기 한 달 전부터 나는 히스테리를 부렸다. 그리고 그 때에는 원시적으로 가슴둘레를 잴 때도 남녀 할 것 없이 웃통을 벗고 줄을 일렬로 서서 담임선생님 앞에 가서 팔을 벌리고 줄자로 잴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래도 키와 몸무게를 재는 일은 그나마 덜 힘들었다. 그조차도 매우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내가 키를 잴 때는 장난치던 모든 아이들(특히 남자아이들)이 달려들어 몇 센티미터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155cm였던 내가 괴물이니 확인하려고 달려들었던 아이들에게 내 신체 치수를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몸무게도 돼지인가 아닌가를 여실히 드러내야 했다.

그리고 가슴둘레.
이미 2차 성징이 시작된 나는 엄마와의 싸움 끝에 아이들용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고 갔다. 우리 반만 남녀를 나눠 가슴둘레를 재니 복도로 쫓겨간 남자아이들은 복도 창문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보려고 했고 그 일이 힘들어도 내 차례가 된 순간에는 여자아이들까지도 몰려들어 나의 가슴이 실제로 엄마들 것처럼 있는 것인지 아님 왜 쟤만 브래지어를 하는 것인지 그 실체를 알아보려 몰려들었다.

수치스럽고 안 그래도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데다 자존심 센 나는 무감각한 채로 그 이후 수업시간을 버텼다. 그러다 수업 중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그 근원지는 우리 반에서도 장난 심하고 못되고 입까지 가벼운 아이에게 내가 엄마처럼 브래지어를 했다고 여자 짝꿍이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 수근거림이 커져 모든 반 아이들이 날 쳐다보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날 때 마다
성숙했다, 살 쪘다, 가슴 넓어진 거 봐라, 미륵돼지처럼 살이 쪘다, 예전에는 오리궁뎅이였는데 쭉쭉 뻗어
길쭉해졌다, 이제 여자 태가 난다, 지 엄마 닮아 가슴이 크다(여자들끼리 하는 말), 키가 이젠 안 크네,
... 그리고 살 쪘니? 라고 아직까지 끝나지 않는 내 몸에 대한 질문을 가장한 품평들.

그 말들과 시선 속에 갇힌 몸이 딱딱하게 굳어온 것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그 시간들과 말들이 나의 것이 되어 타인의 육체를 보는 것을 느낀다.
이 몸 밖으로 나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 몸 밖에서 아니면 몸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며 자유를 지킬 수 있을까?

아니, 가장 근원적으로 이제 과거의 껍질로 단단해진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또 이 몸으로 존재하고 또 이 몸을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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