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으로써의 몸

남자는 욕심쟁이인가. 불편한 질문들

by moonbow
남자는 욕심꾸러기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가 미인이기에 원한다. 여성미의 이상은 변화지만, 몇 가지 요구는 변치 않는다. 특히 여자는 운명적으로 누군가에게 소유되게 마련이라고, 그 육체는 확고하게 수동적인 특성을 보여줘야 한다. 남성미는 능동적인 작용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체력, 순발력, 유연성이다. 그것은 결코 중단해서는 안되는 육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초월’의 표현이다. 여성의 이상이 이처럼 되는 것은, 스파르타나 파시스트의 이탈리아, 나치의 독일에서처럼, 여자를 국가의 목적을 위해 제공할 뿐 개인의 목적을 위해 제공하지 않으며 여자를 주로 모성으로서만 생각하고 에로티시즘을 인정치 않는 사회에서의.
<제 2의 성> - 신화


한 때는 드라마와 미디어에 잠식되어, 또는 포르노를 방불케하는 문학작품이 진리인 줄 알고

목숨을 거는 사랑을 하려면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어야 하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는 능력, 사랑하는 능력, 그리고 삶의 의지, 삶의 애정, 상대방을 만나는 운 등 너무나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결부된 사안인 것 같다. 누군가는 이를 ‘운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부른다.


한국 사회가 확실히 재밌는 것 같다. 외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은 한국을 ‘재밌는 지옥’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때로는 글쓰는 사람들끼리 한국에서는 드라마틱한 극을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현실이 더 드라마같고 더 희귀하며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한국에서 여성의 몸은 ‘섹스의 수단’과 동의어로 쓰일 때가 많은 듯 하다.

그냥 길거리를 걷고 있으면 다들 평범한 사람인 것 같지만 알게 되는 정보는 어마어마하다.

사회면에 나오는 몰래카메라 뉴스가 사실 너무도 내 앞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피해자가 너무도 많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법집행이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 듯인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랬기때문에 이런 문제는 이제 너무도 곪을대로 곪아 버렸다.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이 있지만 그들에게 의뢰를 했던 피해여성은 야한동영상 안에 박제 된 채로

자살을 택하고 있다. 지난 한 해는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paranoid의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외출 시에는 공중 화장실을 삼가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 쉬운가. 어쩌다 가는 화장실에는 여성동지들의 외로운 사투를 볼 수 있다. 화장실 내 용품을 대체하고 리필한 흔적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도 많은 못 자국과 구멍에 쑤셔넣은 화장지가 이 외롭고도 피로한 사투의 현장으로 보인다. 어쩌다가 공중화장실을 이용했을 때는 어디선가 나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그냥 하나의 성기나 엉덩이로 돌아다니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이렇게 낮은 출산율의 국가에서 임신한 여성을 에로티시즘의 주체로는 커녕 그저 인간으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상한 징조와 증상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원인을 찾아 차근차근 치료할 수 없는 여기저기서 사건이 터지고 유야무야 제대로된 인식이나 논의나 생각의 교류와 감성의 교류는 다 건너뛰는 혈투가 난무하고 어이없이 죽어나가는 응급실과 같아 보인다.


임신한 여성을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조차 없는 것도 하나의 증상인지, 생각해보니 예전보다 임신한여성을 잘 볼 수 없는 것 같다.


한 때의 나도 그랬다. 5무 세대로, 88만원세대로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결혼이나 연애도, 자녀도 없는 내가 남의 귀한 자식을 위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기가 싫다고. 아니면 그런 이기적인 부모들 밑의 자녀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교육받고 자라날 텐데 왜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지 이유조차 모르겠다고. 아이를 싫어하고, 남의 아이를 보고 미소 짓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그저도 많이 먹었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그것만큼 좁디 좁고 자폐적인 사고방식이 없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내가 저런 생각을 잠시라도 했던 것처럼 이 사회는 너무도 강팍하고 황량한 지대인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는 이 응급환자인 우리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살려내고 치료하고 위로 하고 가르쳐야 하는 걸까?

또 단호하고 꿋꿋하게 스스로 인간성을 지킬 권리를 지켜 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보자도 얼마나 외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국민체조를 ‘사람 체조’로 부활시켜 앉아서 스마트 폰만 하는게 아니라 움직이게 시키면 저절로 치료가 될지도 모르겠다. 당최 손가락만 움직이면서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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