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 4

제3의 성

by moonbow
여자가 종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면 역시 괴로운 위기를 거쳐야 한다. 40세에서 50세 사이에 적령기의 역전승인 폐경기가 나타나게 된다.(...) 이 때 여성은 비로소 암컷의 굴욕에서 해방된다. 그 활력은 손상을 입지 않았으므로, 거세된 남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자는 자기를 억누르고 있는 힘의 희생물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일치한다. 때때로 나이를 먹은 여자를 ‘제3의 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사실 그녀들은 수컷은 아니지만 암컷도 아니다. 그리고 이 생리적으로 자율성은 그녀들이 이전에는 소유하지 못했던 건강, 균형, 정력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 육체는 의식이 행위를 통해 살아남아야만 비로소 진정한 현실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생물학은 ‘어찌하여 여자는 타자인가?’라는 우리의 물음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성에게 자연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를 알아야 한다. 또 인류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만들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제2의 성> - 시몬느 보부아르



예전에 일본의 우익 정치가가 한 연설에서

세상에 ‘할머니’만큼 쓸모 없는 인류가 없다고 주장한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할 지 몰랐던 경험이 떠오른다. 그의 주장은 할머니는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는 존재로 나라를 위한 인력을 생산할 수 없는 ‘비활동성’과 ‘비효율성’을 상징하는 필요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전쟁이 기본 자본활동이라고 생각할 때 여성들은 죽어가는 군인들과 사람들을 대체할 인간을 자꾸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인가.


대체 인간이란 여기서 무엇인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인간으로 봐야 할지, 그럼 할아버지들은 괜찮은건지..(위험한 발언인가, 발기력과 정자검사라도 해야 분류해야 한단말인가...) 다소 위험한 질문까지 생각하게 하는 생각만 많은 날 어이없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비슷한 일이 최근 대한민국에 있었다. 가임기여성 인구를 조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방식과 설문내용이 가히 가관이라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성의 인구를 헤아리는 방식이 하나의 육체나 하나의 존재, 인간이 아니라 두 개의 난소와 하나의 자궁과 매달 흘리는 피로 매겨지는 게 분명했던 조사였다. 이를 경험한 여성들은 분개했다. 얼굴이(개인의 아이덴티티) 지워지고 얼굴이 자궁으로 대체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신체에 대한 재인식과 철학이 후퇴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정제할 수 없는 수많은 단어들과 질문들만이 맴돈다. 내 몸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은데 또 다른 고민과 논의가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어느새 내 신체를 인생에서 아이가 있는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닌지 조차 선택할 수 없는 경제적 위치에 있지만 또 동시에 그것의 선택권이 과연 원래부터 스스로에게 존재했던 것인지 조차 헷갈린다.


시몬느 보부아르와 함께 영원히 타자인 여성이 아닌 여태까지 인류가 여성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탐구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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