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ㅡ 천천히 걷는다
같이 듣는 수업에서 창덕궁에 다녀왔다. 더 정확히는 창덕궁 후원을 갔다. 그 날 아침 갑자기 힘들었다.
(나는 궁녀였다ㅡ 궁에서 일했다. 그 기억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랄까)
하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갔다. 역시 관람객으로 가는 건 좋은 일이다.
소박한 왕의 정원. 연못.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 담에 고양이가 아주 떡하니 식빵을 굽고 있다. 이 고양이는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인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는 후문이다.
거대한 은행나무 잎이 만든 노란색 융단과 사각진 허공의 프레임 뒤로 보이는 자연그대로의 경관.
이렇게 문을 위로 다 올리면(분합문) 자연그대로의 경과도 감상할 수 있으며 더 넓은 공간으로도 잔치나 연회가 있거나 행사가 있으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올리는 일은 힘들었을 것 같다. ............
역시나 문을 열면 뒤에 다른 사진이나 액자를 걸어둔 듯 실사 경관을 볼 수 있다. 자연그대로의 프레임. 난 저것이 참 마음에 든다.
효명세자가 있었던 곳이라 했는데. 자세히 잘 기억이 안난다. 너무도 소박한 저 모습이 참 아름다운데. 규모나 크기와 화려함이 대세인 현재의 눈에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근무 당시 무슨 왕이 이렇게 조그만 데서 살았냐며 중국 자금성과 비교하는 사람들 상대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조선이 망국이지만 적어도 오백년이 넘는 역사 속엔 그 시간 속에 철학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역사 시간을 싫어했다. 선생님들이 다 화내면서 가르쳤기때문이다. 난 그냥 화내면서 하는 이야기는 다 듣기 싫다. 흐흐 ㅜㅜ. 물론 통탄하게 된다. 역사를 알아가다보면. 왜 역사를 차분하면서도 가슴 뜨겁게. 처절한 반성을 하면서 또 동시에 자긍심을 가지면서 알아가기란 왜 이다지 어려운 것일까.
이렇게 오래된 나무들. 기형의 나무들을 보면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기괴한 아름다움이랄까.
저 요염한 지붕의 곡선미란. 얄궂기도 하여라.
다소 긴장하고 힘들었던 궁궐나들이를 위로해주는 남원국밥집의 남원국밥. 저 김. 맛있었고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낙지 젓갈. 맛있었음. 사골에 시래기. 정말 은은하면서 정겨운 맛이었다.
트라우마의 장소에 대면함으로써 부숴버리고 싶었으나 무의식의 나쁜 찌꺼기들이 올라왔다. 궁녀의 다이어리를 써볼까 생각도 하고 언젠간 쓰겠지만. 거리가 필요하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