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엘 마리 2

아르바이트 구하기 대작전

by moonbow

오후 4시가 되기 전 마리는 취업사이트를 들른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목록을 다이어리에 정리한다. 취업전문가가 본다면 특색없는 목록이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를 고용해서 자기소개서를 봐달라고 할 그 정도의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안 된다. 그리고 또, 또... 알바를 하다보면 자기소개서를 ctrl c , v . 복붙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당연지사 떨어지기 마련이고 또 떨어지면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도 저 해저 3 만 리 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오후 3시다. 다행히, 그리고 아까 구한 알바가 마음에 들었던 건 집에서 가까워서 이다. 대충 옷 더미 속에서 발굴한 입을 만한 옷을 걸치고 나간다. 오후가 되었던지라 아주 크게 덥지는 않았다.

하늘은 쾌청하고 구름도 예쁘다. 길가에는 초록이 한창이다. 새도 지저귄다. 집 뒤에 있는 작은 동네 뒷산도 이 집에 사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짜로 저 동네 뒷산을 많이 오른 적은 없다. 일어나서 걷기라도 하자면서 걷다 보면 주변에는 할머니, 아줌마, 할아버지, 아저씨 들이다. 이제는 굳이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는 분들 속에 덩그라니 마리만 혼자 20대였던 것이다. 실패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 바쁘게 사는 20대 속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쁘지 않게,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저 마리는 좀 더 주저하고 좀 더 뭔가 잘 맞는 일을 찾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없어지는 것은 자존감, 자신감, 통장잔고, 많아지는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살과 나이 뿐이었다.

어장역 사거리에 너희은행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시간 맞춰 왔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문자를 보냈다.

‘네, 1분 만 기다려주세요.’

문자를 보면서 사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핫팬츠의 여자들을 봤다. 다들 어디로 저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나중에 마리는 그 당시의 느낌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굉장히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구석에 있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그런 따스한 느낌을 받았었다고.

누군지 건널목 저 뒤에서 이글이글한 두 눈이 마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는 직감적으로 저 사람이 문자를 주고받은 사장이라는 사람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남자였다. 흰 살결에 짧은 머리, 천재 안경이라고 할 만큼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을 썼다. 건널목을 건너오면서 그는 웃었다. 천진난만한 그 웃음에 마리도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사장은 말했다.

“우리 다시 건너가야 되는데.....”

“그럼, 뛰어요.”

그리고 둘은 웃으면서 뛰었다. 마리에게 그 순간은 그저 찰나의 지나가는 시간이었지만 이 목에게는 만나자마자 아기처럼 웃던 그녀가 ‘뛰어요.’ 라며 같이 뛰어가던 그 순간이 가슴 속에 유리 조각처럼 박혔다. 시간이 흐르고 마리도 그 순간이 결국 자신도 모르게 이런 슬픔에 자신을 가져다 놓은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이 목은 그녀를 차근차근 보기 시작했다. 마리도 그런 시선이 느껴져 조금 불편해졌다. 마리가 조금 불편해 하는 걸 느낀 이목은 말을 시켰다.

“집이 가까워요?”

“네, 걸어서 진짜 10분 거리에요.”

“졸업은 언제했어요? ”

“작년에요.”

금방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이상하게 마리는 마음이 편했다.

‘어쩌면 저 사람은 선수인지도 몰라.’

라고 짧게 마리는 생각했다. 선수라고 하면 뭐랄까 모르겠지만 자기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남자들 말이다. 흔히 로맨틱 영화에서나 연애지침서에서나 명언이나 된 듯이 말한다.

“자신을 주인공처럼 느껴지게 하는 남자를 만나라.”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마리는 그런 남자는 여태껏 바람둥이 밖에 없다고 느꼈다. 아니면 진자 나만 주인공처럼 느끼게 해주는 남자는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든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 적어도 그런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다. 마리의 지금 오래된 남자친구 T와 같은 남자 밖에 없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게 해줄 남자, 적어도 내 남자는 아니더라도, 그런 남자를 알게 해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리는 자신의 실루엣을 훑는 남자의 시선을 느꼈다. 그렇지만 노골적이지도 않고 밴딩 바지위로 튀어나온 뒷 구리 살이 도드라지는 느낌은 못 받았다. 아주 둥근 곡선을 그리며 따스하게 스며드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마리는 그런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눈빛은 아니었고 그저 너의 아름다움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는 은근한 눈빛이었기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몸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느끼는 자기 자신을 알아채진 못했으나 마리는 문득 자신의 몸을 쳐다봤던 남자친구 T의 시선에 비해서는 매우 애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마리는 그 순간에는 그런 모든 것을 무시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남자 목욕탕에서 깎은 듯 한 머리. 여름인데도 셔츠 단추를 끝까지 여민 모습. 유행이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를 바지 스타일. 얼굴 빛깔은 너무도 핏기가 없었고 표정에도 아무 감정이 없었다. 작은 오피스텔 안에는 컴퓨터가 몇 대 있었고 싱크대 앞에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테이블 앞에 이목은 믹스 커피 한 잔을 내놓았다. 얼음은 없지만 냉장 보관된 믹스 커피였다. 남자들의 살림살이라, 마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커피 잔을 보았다.

‘저 안의 물은 수돗물일지도 몰라.’

라고 마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콘텐츠를 모으고 있어요. 엑셀로 정리를 해서 나중에 홈페이지를 만들겁니다.”

이목이 말했다. 그 말하는 와중에도 관리자인 듯 한 다른 남자는 뾰로퉁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는 콘텐츠의 내용과 대체 뭘 만드는 지에 대한 것을 더 알고 싶었으나 이 목은 별 얘길 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알바니까.’

잠시 동안의 침묵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이목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사실 별 상관이 없는 같은 학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깨고 마리는 말했다.

“전 무슨 일을 하나요?”

그러자 이 목은 마리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뭐지, 저 눈빛은?’

하지만 마리는 그런 아이 콘텍트에 자신이 있었다. 숨길 것도 없고 딱히 자신의 눈빛에 별 다른 탁한 기운이 있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었다.


알바는 정말 구하기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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