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긴 소설
"39번 한 마리씨 들어오세요. "
남자 직원은 웃음을 조금 참으며 회의실 안에 있는 양복 입은 면접관들에게 말했다.
"마지막 39번 한... 마리?! 씨입니다."
"힘내세요!"
남자 직원은 웃음을 참으며 작은 소리로 마리에게 속삭였다. 마리는 언제나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 부터 들어왔던 웃음 참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긴장감을 누그러뜨렸다.
'괜찮아,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나 한 마리 잖아.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한. 마. 리!'
하지만 그렇게 되뇌일 수록 자신감은 더 더욱 참을 수 없었고 겨드랑이의 땀은 이미 흠뻑 젖어 그레이 자켓에 검은 동그라미를 양쪽에 그리고 있었다. 마리는 양쪽 겨드랑이에 힘을 주어 검은 부분을 감추려 노력하며 면접관을 향해 걸어갔다. 보이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자신감이 좀 상승했는지 면접관들이 웃는 모습이 보였고 마리에게 그 남자들이 작아보였다.
"한 마리 씨!"
"네. 저는 한국대학교 영문과 졸업을 앞둔 세계가 모두 아는 이름 'mary' 마리, 한 마리 입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식은땀이 났다. 면접관들이 웃는 소리가 들리자 먹혔다 싶은 마리는 30초 안에 자신을 어필 할 수 있는 자기 소개서를 읊으려고 입을 뗐다.
"저의 18번은 아베 마리아.."
"한 마리씨! 저, 말 좀 듣고 시작해요. 그 의자가 아니라 여기 앞에 의자라니깐! 앞으로 나와서 앉으세요!"
한 마리는 자신이 앉은 의자 앞쪽 회의식 책상 너머 중간에 놓여진 의자를 보았다.
그 곳이 마리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였다. 민망함에 마리는 귀까지 빨개졌다. 그런 마리를 보며 면접관들은 더 크게 웃었다. 웃음을 참으려는 기색도 보였다.
"한 마리씨는 남자 친구가 있는가?"
'없다고 이야기하면 연애도 못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있다고 하면 또 다른 질문이 들어올 텐데....'
라고 마리는 머리를 굴리며 입술을 옴짝 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긴 면접 시간에 지쳤다는 신호로 작은 한숨소리가 나왔다.
"없습니다!"
"남자 친구가 없는데도 씩씩하네!"
마리의 이마에 맺혀가던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곧 있을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면접관들이 피식 웃었다. 이젠 웃음 소리가 마리의 온 몸을 때리는 회초리 소리 같았다.
"그러면 결혼도 해야 할 텐데 일가르쳐 놓고 일 시켜먹을 만 하면 다른 여직원처럼
2년 정도 일 한 다음에 그만 둘텐가?"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저는 여성의 커리어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 번 단절 된 커리어는 다시 이어 가기가 힘들다고.."
"한 마리씨는 페미니스트인가?"
"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불리해질테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진실에 위배되나 나를 다 설명하는 말은 아니야. 뭐라고 대답하지? 빨리 ..빨리..'
그 때 어디선가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 씨는 영문학과를 나왔군요. 영미시 외우는 게 있으면 한 번 읊어보세요."
구원의 목소리가 아니라 지옥 문이 열리는 목소리였다.
"아니...그게 저..... "
"시가 아니여도 좋으니까 외우고 있는 문학 책 속의 한 구절이라도 말해 봐요."
한 마리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그 빌딩의 꼭대기 층 대회의실에 타들어가고 있는 땀제조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한 마리의 겨드랑이 힘은 더욱 들어갔으나 양쪽 동그란 검은 구멍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한 마리는 문을 닫고 나왔다. 조선 시대의 상급 내시처럼 조아리면서 감사하단 말을 연신 했다.
'뭐가 감사하단 말인가? 면접에라도 불러줘서 면접이라도 봤다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며칠을 벌었다는 거? 아니면 면접비라도 줄텐가?'
마리를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퇴근 준비를 하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주 부드러운 태도로 마리에게 두꺼운 종이백을 주었다.
면접비 대신 주어진 것은 그 회사의 계열사에서 나온 자기 계발서였다. 마리는 자기를 계발해서 면접을 더 볼 것인지 아니면 '자기'를 개발해서 정말 취집이라도 가야하는 건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빌딩 숲을 걷다보니 땀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네이비 자켓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쳤다. 기분이 영 찜찜했다. 몸에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지하철 화장실로 달려가 마리는 안에 땀에 젖은 자켓을 벗고 오는 길에 산 부드러운 촉감의 살구색 면 티를 입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화장실 밖 거울을 보니 어두운 지하철 화장실 조명에도 아이라이너가 번져 눈 밑이 검게 번 진 것이 보였다. 머리는 이틀은 감지 않은 것 처럼 떡져있었다.
'물고기 한 마리, 양 한 마리, 개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잠이 오질 않았다. 영미시 시간에 열심히 안했던 건 아니었다. 시 한편을 외워서 암송 시험까지 봤다. 이불을 발로 찼다가 머리를 쥐어 뜯었다. 한기가 들어 다시 이불을 목 위 까지 덮었다. 침대에서 잠이 안 올 때 항상 하던 대로 마리는 세상의 모든 동물의 이름을 대 가며 한 마리씩만 셌다. 그리고 더 이상 셀 수 없을 때, 정말로 하기 싫은 한 마디를 할 수 밖에 없어지는 마리였다.
'.............인간 한 마리......'
옆으로 돌아 누운 마리의 베개가 축축하다. 창 밖에는 밤 바람이 부드럽게 봄의 끝자락을 따라가고 있었다.
며칠 후 마리는 매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시계를 보니 오전이 아닌 오후 2시.
‘헉! 이럴 수가!’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려고 하다가 그냥 주저앉았다. 이불을 더듬어서 핸드폰을 찾았다. 벽을 기대고 핸드폰으로 취업 카페 ‘사람답게 살자’에 들어갔다. 최신 글에 어제 면접을 봤던 기업의 발표가 났다는 글이 올라왔다.
마리는 몸을 일으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oo에 지원해 주신 한 마리님 감사드립니다.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채 채용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희망찬 앞날을 기원..
컴퓨터 모니터를 꺼버렸다. 뛰어난 능력은 무슨. 희망찬 앞날도 정말 공갈빵같은 말이다. 속이 텅비어 있는 말들.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원래 이랬어. 떨어질 걸 알았잖아. 그래도 씁쓸하다. ’
배가 고팠다. 마리는 부엌에 가서 뭐라도 먹으려고 했다. 찬장을 열어보니 라면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밖에 나간 마리는 그냥 햇빛이 싫었다.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구매했다. 하지만 체크카드는 잔액부족으로 나왔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은 마리보다 더 민망해 했다. 라면만 구매했다. 다행히도 라면은 긁혔다.
라면을 먹으며 마리는 알바연옥에서 알바를 보고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알바.
‘KO에서 알바를 구함. 자유롭게 시간 조절 가능. 어장동에 가까이 있으면 좋음. 콘텐츠 정리 영타 300타 이상.010 – 0000-0007’
마리는 바로 문자를 보냈다.
‘알바 혹시 구하셨나요?’
지지지직.
‘아직입니다. 성별과 나이 좀 알려주세요.’
‘여자, 27’
‘4시에 오실 수 있으신가요? 어장역 삼거리에서 뵈어요.’
‘네’
마리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 아르바이트면 이제 시간조절을 하면서 면접을 보러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전 소설을 다시 좀 길게 써 봤어요. 처음엔 중복된 내용이 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