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엘 마리4

이목의 이야기

by moonbow

이 목은 마리가 사라진 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뭐가 저렇게 급한 것일까, 하고 이 목은 생각했다. 별로 하자도 없어보이고 그리 멍청하지도 않아보이는데 왜 저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 한 참 생각을 하다가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리고 옆에 철희를 보았다. 한숨을 푹푹 쉬다가 가방을 꾸린다.

“왜? 밥 안먹고 가게?”

“밥 먹으려면 미리 먹었어야지.”

“도서관 가는 거야?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어?”

“휴우 그만 해라. ”

“그렇게 띄엄띄엄 공부해서 공무원 붙을 수 있겠냐고. ”

“그만 하라구! 이 자식아!”

그렇다. 이목도 철희도 고등학교 땐 수재 소리를 들어가며 공부를 했다. 놀거 다 놀고 공부할 거 다 공부하고 그래도 재밌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성적에 따라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둘다 대학에 들어오고 집 안 사업이 폭삭 망했을 때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 쓰지 않고 그들은 과외를 하고 자신들이 강남 8학군에서 배웠던 원장을 찾아가 일자리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객이었을 때와 돈을 벌려는 입장은 달랐다. 그렇게 하루에 20시간 씩 외우고 가르치고 그 짓도 이제 질렸다.

이젠 새로운 사업을 하는 거야.

철희는 이목을 믿었다. 하지만 입만 열면 이 사기꾼 자식아.

라고 말했다. 사실 이목이 대부분 말하면 철희는 가만이 듣고 그가 벌인 일을 수습하는 쪽이었다. 말 주변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하겠나.

이목, 그는 이제 여자들에게 질려 있었다. 돈을 벌어 집에 가져다 주고 학점을 그래도 따기 위해서 과제나 대리 출석을 할 때는 후배나 동기들에게 부탁하고 가끔 학교에 올 때는 거하게 쐈다. 그런 그의 경제력과 사회를 일찍 경험했던 분위기때문에 여자 후배들은 그를 잘 따랐다. 옆에 와서 그의 몸을 술김에 만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수록 그는 그런 여자들이 싫었다. 어렸을 땐 예쁜 여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고 잠을 설쳤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예쁜 여자들은 그 얼굴값을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기꾼 자식아. 거기에 또 말려들지 마.”

철희가 나가면서 일갈했다.

사실은 한 달 전에 이 목은 여자친구와 결별했다. 사실 여자친구라고 하기도 그랬다. 집안에서 정혼자가 있던 으리으리한 집안의 여자였다. 이미 결혼할 남자는 미국에 유학가 있었고 그 집안에서 경제적으로 무너진 집안의 아들을 원할리 만무했다. 정혼할 남자는 이미 5급 공무원, 외무고시를 붙은 남자였다. 군대를 마치고 잠시 어학연수를 가 있었다. 그 사이 그 여자는 이목에게 말했다.

자신의 인생은 죽었다고.

그런 그녀가 불쌍했다. 어린 시절 대치동에서 같이 그룹 과외를 했던 친구였다. 그녀의 꿈도 알았고 집안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도 알았다.

친구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계속 되었다. 밤새 통화를 하고 영화를 같이 봤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온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은 여태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그에게 안겨 온 것은 한 달 반 전이었다. 술에 취해 인사 불성이 되어 전화를 건 그녀였다. 데리러 갔던 것이 실수 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안겼다. 얇은 블라우스로 그녀의 온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목의 이름을 부르며 입을 맞췄다.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었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시간도 같이 어려움을 나눴던 시간들도 모두 검게 그을리고 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가까운 접촉은 이제 더 이상 서로를 더 멀리 가게 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항상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목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리다니. 그래서 더 일에 몰두 했다. 그리고 그녀는 제안했다. 그에게 남자친구 역할을 해달라고.

영화도 같이 보고, 소풍도 가고, 자기 친구들을 만나 술도 사주고 퇴근할 때 데릴러도 오고 여행도 가자고. 그리고 결혼 후에는 그 추억을 품고 죽을 때까지 살겠노라고.

냉정하게 거절했지만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잠을 못 잔지 이미 2주가 넘었다.

그리고 마리를 보았다. 건널목에서 같이 달렸던 순간에 순수함이 밀려왔다. 뚱한 표정도 당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웃겼다. 하지만 웃음기를 잃어버린 하얗게 질린 느낌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2년 전에 죽은 여동생이 생각났다. 괜찮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하던 그녀는 정말 괜찮아졌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방 안에만 박혀 있던 그녀가 나와 청소를 하고 밝게 웃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외식도 했다. 이제 예전의 내 동생으로 돌아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오랜만에 편히 잤다. 다음 날 하얗고 차가운 동생을 발견하고 배신감이 들었다. 여자들은 이렇게 항상 배신한다. 이 목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 마리는 책임감이 강하다고 했다. 그걸 장점으로 말하는 그녀가 그는 솔직히 안쓰러웠다. 책임감이 강하면 그는 사회생활 하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안다. 미꾸라지처럼 적당히 빠져야 한다. 그의 여동생도 심하게 책임감이 강했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를 갉아 먹곤 했다.

이 목은 무섭게 일에 집중했다. 다 허상이다. 다 잡생각이다. 지금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을 하다 보니 밤 10시가 되었다. 담배를 물고 창 밖을 봤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는 왜 웃음을 지었는지도 잘 몰랐다. 혼자 있을 때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 목은 한 마리가 괜찮은 여자인 것 같아 좋았다. 아마도 모태 솔로 인 것 같은 김철희의 연애 상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의심해 봐야 하는 건 많다. 자고로 여자들은 믿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니 말이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그 번호였다. 스팸으로 넘기지 않았다. 아직.

아직도 그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짜증났다. 미소 지었던 좋은 기분은 다 사라졌다. 4화

다 잡생각이다. 지금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을 하다 보니 밤 10시가 되었다. 담배를 물고 창 밖을 봤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는 왜 웃음을 지었는지도 잘 몰랐다. 혼자 있을 때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 목은 한 마리가 괜찮은 여자인 것 같아 좋았다. 아마도 모태 솔로 인 것 같은 김철희의 연애 상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의심해 봐야 하는 건 많다. 자고로 여자들은 믿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니 말이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번호였다. 스팸으로 넘기지 않았다. 아직.


아직도 그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짜증났다. 미소 지었던 좋은 기분은 다 사라졌다.

담배를 성급하게 빨아 끄고 바로 다시 담배를 폈다. 줄담배. 심장이 안 좋아진 이후로 줄담배는 1년 째 피지 않았다. 핸드폰은 이목이 진저리 치는 만큼 심하게 진동하더니 결국 포기했는지 뚝 끊겼다. 책상 위의 핸드폰이 잠잠해 지자 갑자기 찾아온 고요가 더 어색했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검색했다. 나오라고 술 먹자고 하면 바로 나올 여자들이 열 명 이상은 됐다.

이목은 손에 걸리는 여자 후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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