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사치야
이목이 부른 여자 후배는 그 사이에 예쁘게 단장을 하고 호프 집 주변을 살폈다. 약속 시간보다 5분 밖에 안 늦었다.
조금 더 늦게 가야 하나, 아니면 빨리 가야 하나.
망설일 것 없었다.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고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 여자 후배의 표정은 실망감으로 어두워졌다. 이목이 부른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갖 대학가 주변에 공짜 술을 탐닉하는 떨거지들이 다 모였다. 맥주를 마시는 후배들을 알뜰하게도 챙기면서 이목은 자기 술도 아주 야무지게 마셨다.
“형, 요즘은 여자 없어요?”
“형 정도면 압구정에 막 그런 준 연예인급 여자들도 다 사귈 수 있잖아요.”
여자후배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역시 남자들이란...”
“형 우리과 편입한 애 중에 소속사도 있고 엄청 이쁜 애 있는 애 선배 안다고 소개 시켜달라고 막 관심있어 하던데요.”
여자 후배는 맥주를 따라 눈치 제로의 못난 감자같이 생긴 동기 남자애의 입을 틀어 막았다.
이목은 그런 여자 후배를 고요히 바라봤다. 여자 후배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저 눈빛은 여자가 예뻐 죽겠다는 눈빛인데 저런 눈빛으로 여자들을 들썩이게 해놓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목은. 거기에 여자들은 지쳐갔고 나중에는 화를 내면서 뒤에서 이목을 욕하곤 했다. 여자 후배는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목에게 이목을 끌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맥주를 마셨다. 옆에 감자같이 생긴 놈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여자 후배는 이목의 옆 자리를 꿰찼다.
이목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맞장구 쳐주기, 그리고 자신이 이야기할 때마다 허벅지를 살짝 살짝 때리기, 웃을 때 눈웃음을 만들기, 여자 후배가 온갖 잡다한 기교를 부리고 있을 때 타카하키가 들어왔다.
“어이, 타카하키 어서와.”
이목이 말했다. 머리를 열심히 왁스로 세우고 조금은 퇴폐적인 분위기의 남자가 들어오자 호프집의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아니, 혀엉. 이 시간에 부르면 어떻게 합니까? 내일 출근하라믄서요?”
분위기 있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의 깍듯하면서도 과하게 예의있는 말투가 부조화를 이루어 코믹했다.
“오빠, 누구야? 누구야?”
여자 후배 중 한 명이 말했다.
“이그, 기집애 밝히긴. 여긴 타카하키고 일본에서 만난 동생같은 친구야. 어머니가 한국분이고 한국에 좀 있을거야.”
이목이 말했다.
“안녕하세욤? 저는 타카하키입니다. 타키라고 불러도 좋습니다만 반갑습니다.”
여자들이 꺄르르 웃고 남자들은 조금 경계했다.
여자 후배는 다른 여자들이 타키 쪽으로 관심을 돌리자 조금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타키가 와서 자리가 좁아져 이목 옆에 더 붙어 있으면서 몸을 더 밀착시킬 수 있게 되어 내심 기뻤다.
술잔을 기울이는 속도가 빨라지고 여 후배 또한 이목에게 기대거나 터치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혼자 소주 3병을 마신 이 목은 웃고 떠들어댔다. 일부러 더더욱. 여후배는 맥주를 들이키더니 결국 그 자리를 사수하려는 계획을 잊고 화장실로 갔다.
이목은 나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리고 안에서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카드를 꺼내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타키가 붙잡았다.
“모기~ 어디가아?”
“야, 모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나간다. 낼 출근 해!”
이목은 돌연 사라지고 화장실에서 화장도 고치고 나온 여자 후배는 이목이 갔다는 말에 백을 챙겨 밖으로 바로 나왔지만 어디에도 이목의 뒷 꼭지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이목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짜증이 난다는 듯 여자 후배는 발을 굴렀다. 타키는 여자 후배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혼자 재밌어했다.
다음 날 아침, 마리는 뜨거운 햇살과 함께 출근했다. 일찍 온다고 했는데도 딱 정시다.
휴우
이미 조선시대 관리같은 철희는 나와서 이마 윗부분만이 파티션 너머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마리는 생각한 후 컴퓨터를 켰다. 곧 이목이 들어왔다.
“안녕~”
저 큰 키에 안 맞는 애교 가득한 목소리는 뭐람.
마리는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애교 있는 목소리로 인사를 해놓고 마리가 쳐다보며 인사를 하자 굳이 자길 쳐다보지 말라는 듯이 스르륵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 이후는 컴퓨터 자판 소리와 마우스 소리만이 사무실을 가득 매웠다. 어색함을 지우기엔 키보드 소리가 가장 적합하다. 한동안 자판 소리에 묻혀 마리도 단순 작업에 다른 잡생각들을 지우고 일을 했다. 잡생각 지우기에는 이런 일이 제일 좋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그 단순한 일을 찾고 앉아서 하기까지가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마리가 커피를 타려고 일어나는 순간 문으로 머리에 스타일리쉬한 까치집을 얹은 것 같은 남자가 들어왔다. 한 낮의 사무실보다는 클럽에 어울릴 듯한 남자를 보자 마리는 뭔가 굉장히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비현실적 느낌.
“어떻게 오셨어요?”
마리는 직원으로써 본분을 다 하고자 말을 꺼냈다. 하지만 곧 그 질문이 바보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기~! 뭐야. 어제 새벽 4시까지 술 메겨놓고 출근 먼저 하기 있어?”
“일은 일이지! 너 지각이야. 깎는다.”
“모기~ 어제 너 가고 그 여자애가 막 울라고 했어. 너한테 거의 안겨 있던데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해?”
마리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당황하다가 순간적으로 다 파악을 했다는 듯이 그럼 그렇지, 란 표정을 지었다. 이 목은 그런 마리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아, 너무 앵겨 붙더라고.”
그 말을 하면서 사실 이목은 여자가 싫지는 않았기에 자기도 모르게 과시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마리는 다시 업무모드로 들어갔고 이목은 본능적으로 마리의 관심을 낚고 싶었다.
“타키 나 사귈까?”
“모기~ 속이 꺼매, 꺼매. 더러워.”
“이 사기꾼 자식아. 맘에 없는 소리 하고 있어.”
사실 마리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하면서 귀는 당나귀처럼 커져 있었다. 한 명은 드라마에서 나온 것 같은 뭔가 추리닝만 입고 있어도 화려한 놈이고, 한 명은 조선 시대 관리 같고 새로 들어온 놈은 아키하바라 뒷 골목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기 때문에 그 그림은 근래 본 것 중에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마리가 흥미를 보이는 것 같지만 표정에 안 들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을 파악한 이목은 태세를 금세 전환해서 키 대사를 쐈다.
“연애는 사치야. 연애는 무슨.”
마리는 애교 섞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그런 목소리와 저 대사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연애가 사치인 건 맞았다. 뉴스에선 연애가 사치라서 못하는 젊은이가 많다고 하는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 북, 카페에는 연애하는 애들이 널렸다.
“근데 모기~ 저기....여기....”
타키는 마리 뒤에서 손가락으로 마리 뒤통수를 살짝 가리켰다.
“어, 타키 거기 마리 씨 옆 자리에 앉아. 네가 늦게 와서 그 자리에서 일해야 돼.”
“모기, 모기, 너무하다.”
“닥쳐. 타키. 그리고 모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마리는 자기도 모르게 코로 웃음이 나올 뻔해서 헛기침을 두 번 했다.
‘아 코딱지 나올 뻔.’ 하고 마리는 생각했다.
갑자기 풋 하고 웃으면 코딱지가 나올 수도 있어요...조심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