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뭘 먹지
여름은 그 절정을 향해 내달리듯 매미가 새벽부터 발악을 하며 울어댔다. 7년 만에 세상에 나오고 여름 한 철, 생명을 다해 운다고 하니 봐줘야겠다고 마리는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친 마리는 겨우 출근을 했다. 가는 길에 뭐라도 사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빈 속에 믹스 커피를 타서 마셨다. 카페인과 당이 동시에 있는 믹스 커피는 아침 식사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생존 필수품목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뒤에 남는 끈적거리는 달큰함은 별로 상쾌하지 않았다. 앉아서 N 홈페이지의 여러 항목들을 마우스로 클릭하다가 사장이 왔다.
“안녀엉~”
‘왜 저렇게 무서운 덩치와 표정으로 애교스럽게 인사를 할까?’
인사를 하며 자리에 들어가는 이목을 보는 마리. 하지만 이목의 온몸의 세포들은 또 다시 그런 시선을 거부하고 있었다.
‘뭐지? 저 이상한 기운은? 웃겨. 관심 갖지 말라고 시위하는 모양새잖아? 참나. 웃기지도 않는다. 진짜.’
이목을 보면 마리는 화려하고 잘 빠진 여자들, 그리고 손톱, 팔꿈치, 뒤꿈치까지 잘 손질한 여자들, 그리고 뭔가 방에는 크림색 화장대가 있을 것 같은 여자들로 둘러싸인 모습이 상상됐다. 상상이라기보다는 그런 배경이 보였다.
그래도 이목이 와서 다행이었다. 더 이상 어색한 침묵을 나누고 아재 개그를 시연하는 철희와의 불편한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점심을 대체 뭘 먹는단 말인가?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이 모든 현대인의 고충인가.
또 다같이 먹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 싫다면 그 메뉴를 선택하기가 힘들어 진다는 것. 한 숨이 나왔다. 출근해서 한 시간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컴퓨터를 노려본다. 이목의 마우스와 키보드 소리가 났기 때문에 적당한 긴장감으로 모두들 일 하는 것 같았다.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리는 목구멍으로
‘밥 안 먹어요?’
‘점심 먹어요’
‘전 밥 먹고 올게요.’
‘그만 퇴근할게요.’
‘오늘은 이만.’
‘배고파요.’
‘밥 안 먹어요?’
‘먹고 합시다.’
여러 말들이 기침처럼 나오려고 했다. 마른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참다가 마리는
“밥 안 먹어요?!”
‘너무 크게 말했다.’
아무도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 3초의 시간. 민망하고 죽을 것 같았다. 그 3초의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아. 뭐가 이렇게 힘이 드냐’
“점심 먹어야지.”
철희가 고개를 들어서 말했다.
‘남자들이어서 그런지 하나 일을 하면 그것만 하는 건가. 아니면 걍 말을 하기 싫은걸까?’ 하고 마리는 생각했다.
이목은 모니터에 고정된 시선을 마리에게 꽂으면서
“뭘 먹을까요?”
라고 말했다.
마리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먹자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메뉴까지 정해야 돼? 게다가 메뉴를 정하면 다들 따르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밥 먹어요.”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여기 밥 맛 있는 데 있습니까?”
타키가 말했다. 모두들 마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내가 무슨 네이버 지식인이냐?’
마리의 표정을 살피던 이목은
“일단 나가자!” 라고 했다.
밥 집 골목에서 할머니 보쌈집을 보다가 또 김밥연옥을 보다가 또 기사 식당을 보다가 중국집을 보다가 절대 누구는 중국집은 안 먹는다고 했다가 겨우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지친다, 지쳐.’
점심을 먹고 나면 찾아오는 졸음. 허벅지를 꼬집고 팔뚝을 주무르며 마리는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오후쯤이 되면 슬슬 제 2의 일터로 가야 했다.
“저 갈게요.”
“내일 봐용~”
이목이 또 어울리지 않게 애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리는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섰다. 나가자 뜨거운 햇살이 마리의 이마를 때렸다.
‘아, 선글라스!’
선글라스를 쓰려고 마음먹고 챙겨 나왔는데 사무실 책상에 떡하니 두고 나온 것이다. 조금 일찍 나왔기 때문에 카페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도 카페에 갈 시간은 넉넉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사무실 문을 열려 있었고 문을 향해 이목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마리가 나간 이후로 계속 그 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그 문으로 마리가 다시 들어와도 이목의 표정과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마리도 그 눈을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바라봤다. 걸어 들어가면서 마리가 먼저 눈을 피하고 책상 위에 선글라스를 집었다.
“이번엔 진짜 갈게요.”
이목은 웃음을 지었다. 늦은 오후였지만 여름의 태양은 아침의 매미들처럼 타들어갈 듯이 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마리는 지나가다 산 선글라스지만 내일 아침의 태양을 위해 다시 가져 온 게 다행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목의 그 검은 두 눈을 본 것은 왠지 다행이 아닌 것 같은 불안함이 슬며시 들었다.
카페에 도착해서 설거지를 하고 멍 때리거나 깊은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계산대 앞에서 카드가 잘 긁히기를 바라고 발과 종아리가 아파서 시간이 빨리 가도록 마리는 바랐다.
집에 온 마리는 들어오자 마자 쓰러졌다. 씻을 힘도 옷을 벗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을 감고 1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다시 아침이 왔다. 일어나자 마자 마리는 생각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사무실에 들어가 오피스텔 싱크대와 테이블을 정리를 했다. 그러다 찬장을 열어보니 쌀이 있었다. 양파도 빨간 망에 들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밥솥이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물티슈로 마리는 밥솥을 닦았다. 열어보고 코드를 꽂아 보니 작동이 됐다. 철희가 그 때 들어왔다.
마리가 인사도 안하고, 어차피 철희는 인사를 해봤자 받는둥 마는 둥이니, 물었다.
“이 밥솥 뭐예요?”
“아... 뭐 목이 밥 해먹겠다고 가져왔는데 한번 해먹고 안에 밥이 다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다시 안 해 먹었어요. 그거 치우느라고 휴우..”
“내가 뭘?”
이목이 어느 순간 들어와 있었다.
“야, 이 시키야. 넌 맨날 사고치고 내가 다 치우냐?”
“아 뭐 그 때 바빠서 어쩔 수 없었어. 저번에 해줬던 거 또 해주면 안 돼? 뭐였더라 고추장 찌개였나?”
“야, 그건 집에서 다 보내준 거 끓이기만 한 건데. 그것도 못하냐?”
“아, 못해. 못해. 마리씨 근데 뭐해요?”
“아, 밥솥이 더러워서 닦았어요.”
“마리씨는 자취한다고 했죠?”
“네.”
“밥 해먹어요?”
“뭐, 해먹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다 그렇지 않나요?”
“아, 누가 밥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목이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다들 자취하죠?” 마리가 물었다.
“타키도 그렇고, 철희 형은 자취긴 한데 워낙 아줌마 같아서.”
“형이예요?”
“야 이 자식아 니가 하도 맞먹으니까 다들 내가 형인지도 모르잖아.”
이목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마리는 생각한 것을 주저하지도 않고 말했다 .
“우리 밥 해먹어요!”
철희와 이목, 그리고 그 때 들어온 타키의 표정이 처음으로 메뉴 통일 된 듯 밝아졌다.
“카레 어때요? 카레?” 마리가 말했다.
“난 좋아! 그리고 싫다는 사람은 잘라버리겠어.”
그리고 3시간 후에 오피스에서는 양파를 볶는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