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엘마리 7

우리 셰프한테 뭐라고 하지 마!

by moonbow


카레는 보통의 맛이었다. 하지만 모두 군말 없이, 밥알 한 톨도 남김없이 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마리는 그리 훌륭한 음식도 아닌데 다들 아이들처럼 먹어서 기뻤다. 하지만 내일 점심에 대한 부담이 따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리도 오랜만에 집에서 한 것 같은 밥을 먹어 속이 따뜻해졌다.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을 때 나는 냄새는 향긋하고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구석이 있었다.

양파를 볶고 당근을 넣고 감자를 넣고 물을 좀 부었을 때였다. 철희가 은근슬쩍 다가와서, 사실 마리에게 너무도 가깝게 다가와서 마리는 옆 걸음질 쳤다.

“이거...... 잘 되는 건가... 카페 오늘 안에 먹을 수 있나.. ”

마리는 그런 수난을 이겨내고 카레를 완성했다. 밥을 할 때는 철희가 옆으로 다가와 또 물었다.

“밥 물 잘 맞춰야 되는데......”

‘아니 그럼 지가 하든가. 진짜 뭔 잔소리를 하고 난리여. 참나.’

마리는 끓어오르는 야채들처럼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먼저 자신이 점심값을 아끼면서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능숙하게 점심을 만들었다.

“식사하세욧!”

마리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 질렀다. 움찔 놀란 타키와 이목이 조용히, 그러나 매우 빠르게 테이블로 모였다.

“우와~ 카레다요~!”

이목은 아무말도 없이 혼자 카레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하얀 밥 위에 짙은 브라운의 카레를 한 숟가락 떴다. 마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목의 입을 곁눈질 했다. 양파를 넉넉하게 넣어 카레는 달콤하고 적절하게 매웠다. 그리고 이목은 아무 말 없이 카레에 집중했다.

마리도 그냥 빈속을 채웠다. 오랜만에 갓 지은 밥과 바로 만든 카레였다. 다 먹고 나니 만드느라 지쳐서 인지 기운이 빠졌다.

“잘 먹었습니닷!”

타키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타키는 빈 그릇을 자연스럽게 모아 개수대로 가져갔다. 타키는 신나게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세상 가벼워 보이는데 설거지를 야무지게 하기도 하네.’

마리는 생각했다. 일을 해본 사람은 그 리듬이 다르다. 타키의 뒷모습은 가녀려 보이는 것과 달리 믿음직스러워 보였고 목 아래 움찔거리는 날개뼈가 셔츠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두꺼운 팔과 섬세하게 갈라진 근육.......손등으로 흐르는 핏줄...

“마리씨, 무슨 생각해요?”

이목이 손가락을 튕기며 마리에게 말을 걸었다. 마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이목을 바라봤다. 이목은 마리가 타키의 모습을 쳐다본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마리를 쳐다보고 있었던 듯 했다.

“아, 그냥 멍 때려요.”

마리의 대답에 이목은 시원하게 웃었다. 이미 마리가 자신을 쳐다본 것에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마리는 이목이 처음 봤던 인상보다는 잘 웃는다고 생각했다. 이목구비가 강한 얼굴이 그때그때 바뀌는 표정에 따라 너무도 다른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낮잠타임 같은 거 해야 돼.”

‘걍 계속 자고 싶다..아.....’ 하고 또 마리는 멍을 때렸다.

“마리씨, 그죠? 점심시간 한 시간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 야박해. 능률도 안 오르고. 마리씨도 편하게 일해요. 능률 오를 때 일하는 게 제일 좋아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냥 앉아서 시간 때우는 일하는 거야.”

‘말은 좋은데.... 능률은 대체 언제 오르는 지 잘 모르겠는데....’

이목은 마리가 또 다시 테이블 모서리를 보면서 멍을 때리자 손을 덥석 마리 앞으로 가져갔다. 마리의 시야에 이목의 크고 긴 손이 들어왔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치며

“마리씨, 그쵸?” 하고 말했다.

“아아...네.”

그제야 이목은 또다시 큰 눈으로 마리를 쳐다봤다. 마리는 이런 남자는 어떤 여자에게나 이렇게 친해지고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세계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진한 이목구비. 강렬한 눈빛. 사람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섬세하고 무심한 행동과 말. 자신감 가득한 말투. 거침없는 말들. 마리는 또 다시 생각에 빠졌다.

‘집에 가고 싶다....

내일 점심은 뭐 하지?‘

그런 마리의 시선이 가 있는 곳을 이목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이목이 핸드폰을 봤다. 그의 얼굴에 머금고 있던 편안함은 금세 어두워졌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리는 눈이 커진 채 울리는 핸드폰과 이목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때 그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남겨진 직원들은 커마시고 있던 커피를 들고 자기 자리로 찾아갔다. 한참이 지나도 이목은 들어오지 않았고 마리는 금세 또다시 모니터를 보면서 데이터 입력에 집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자판을 치고 클릭을 했다. 하나의 파일을 마치고 ‘저장’ 버튼을 누르고 무의식적으로 뒤를 바라봤다.

그 뒤에 이목이 있었다. 둘은 눈이 한참 마주쳤다. 이목은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마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감시 아닌 감시인지. 무언가 찬찬히 자기 자신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런 데에 휩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오후의 해가 기울면서 급히 가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자판을 두드리면서 오른쪽 하단의 시계의 숫자를 보고 있었다.

띠, 띠, 띠!

다섯 시 정각이다.

“먼저 가볼게요.”

“내일 봐요~”

이목이 대답했다. 저렇게 거칠어 보이는 느낌의 남자에게 저런 애교 있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지 마리는 의문스러웠다. 달달하지만 초콜릿의 달콤함이 아닌 패스츄리 식빵 안에 겹겹이 쌓인 고소하면서도 달달하고 뱃속까지 따뜻해지는 목소리. 크게 한 숨을 쉬고 마리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에이프런을 둘렀다. 음료를 몇 십 개 쯤 만들고 설거지를 몇 십번쯤 하고 종아리가 땡땡해지자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멍 때릴 시간도 없이 눈을 감았고 일 이 분쯤 지난 것 같은데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좋은 아침~”

이목이 토스트를 먹으며 들어왔다.

“혼자 먹냐?”

“뭐? 나 너무 배고파서. 마리씨 먹을 래요?”

이목이 한 입 베어 문 토스트를 마리 쪽으로 주는 척 했다. 마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너무 과도하게 흔든 것이 아닌가 잠시 마리는 고민했다. 침묵의 타이핑 시간이 지나고 마리는 초조해졌다.

‘메뉴를 뭘로 해야하지? 그냥 물어봐. 내가 무슨 영양사도 아닌데.’

“오늘은 뭐 먹어요?”

파티션에 가려진 얼굴들이 하나 둘 셋 모니터 위로 둥.둥.둥 떠올랐다.

이목이 가방에서 잽싸게 무언가 꺼내서 마리에게 건넸다. 그것은 일본식 고형 카레였다.

‘카레 마니아인가?’

말없이 마리는 카레를 받아 어제 남은 재료들을 썰고 요리했다. 이틀 째. 역시나 철희가 어슬렁거리며 아는 체 했다.

“감자가 너무 큰 거 아닌가...”

‘대체 저건 혼잣말도 아니고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답하라는 거야?’

“당근은 목이가 안 먹는데......”

‘그럼 니가 대신 다 먹어주든가.......’

고형 카레를 넣자,

“카레 덩어리 씹히면 기분 안좋은데.....” 라고 철희가 말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처럼 마리의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다. 뭐라고 한 마디 내뱉으려는 찰나,

“우리 셰프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 바로 짤라 버린다!”

마리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사뭇 진지한 얼굴의 이 목이 보였다.

8화 아프다, 아프다, 쉬고 싶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이목은 집에 들어섰다. 문이 이목의 등 뒤에서 닫혔다. 현관의 등이 꺼지고 방이 다시 어두워졌지만 평소와는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불을 켰다. 부엌에 앉아 있는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여자의 옆모습을 보고 이목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의 얼굴이 이목을 쏘아 보았다. 이목은 그 얼굴을 피했다.

“왜...왜 전화 안 받아?”

희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내가 다 미안해. 너한테 내가 그러면 안되는데. 그치만 우리 관계가 이렇게 끝나면 안되는 거잖아.”

이목이 담배를 물었다.

“다시 담배를 피는 거야?”

희진이 이목의 담배를 빼앗았다. 이목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것을 참았다. 온 힘을 다해 억눌렀다.

“나가자.”

이목이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희진은 이목의 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저 어깨에 다시 얼굴을 묻을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곧 약혼이었다. 자신의 인생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니었다.

“그래. 내가 술 살게.”

“아니, 차 마셔.”

“왜 우리 원래 술 친구였잖아. 둘도 없는.”

희진은 남에 대한 배려라곤 없는 여자다. 하지만 저 예쁜 얼굴. 배시시한 눈웃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비싸지만 화려하지 않게 꾸민 잘 가꿔진 몸매. 아마 모든 것을 용서받으면서 커왔을 것이다. 이목은 갑자기 한 마리가 생각났다. 이목은 갑자기 표정이 풀렸다. 희진은 그런 이목의 얼굴 표정을 보고 빈틈을 재빨리 찾았다.

“그래. 내가 오늘은 안 울게. 그냥 예전처럼 술 마시자.”

이목은 일단 집에서 희진을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일단 나가자.”

“잠깐만”

희진은 콤팩트를 꺼내서 얼굴을 확인하고 이목을 향해서 웃었다. 이목은 얼굴을 돌렸다. 저 웃음에 마음이 풀려선 안 된다. 무엇보다 둘은 정말로 둘도 없는 친구였다. 집안 이야기, 서로의 연애 이야기 등을 모두 나누었던 친구였다. 중학교 때부터 학원에서 만나 서로의 10대 시절까지 알고 있는 그런 친구. 남자들 중에서도 그렇게 오래된 친구는 없다. 물론 오래되기만 한 친구는 많지만 삶의 고민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이목은 Pub으로 희진을 데리고 갔다. 희진은 반대편에 앉는 대신 이목의 옆 자리에 앉았다. 좋지 않았다. 몸은 희진을 원하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이후의 후폭풍은 그 혼자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목은 눈을 감고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오래된 친구에게 싸늘하게 대해야 한다는 건가. 모든 문제는 집의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데서 온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야, 너 절로 좀 가. 나 더워. 알잖아. 나 더위 많이 타는거.”

“야박하게 왜 그래? 나 꿀꿀하니까 위로 좀 해줘. 너까지 그러지 말고.”

“넌 정말!”

“왜? 화를 내고 그래. 물론 다 내가 너한테 잘 못 했어. 근데 너도 알잖아. 우리 서로 같은 친구 없다는 거. 난 너 없으면 말할 사람도 없어. 내 주변에 여자 친구들? 내가 불행해지면 속으론 웃어. 눈은 우는 표정을 짓지만 입 꼬리는 올라가. 정말 비참해. 사는 게.”

“회사는 어때?”

이목은 화제를 돌렸다. 그녀가 얼마나 힘든 지는 그녀의 마른 몸이 더 말해주고 있었다.

“정말...... 힘들어. 내가 낙하산도 아닌데. 내 실력으로 들어왔는데. 아빠 빽으로 들어왔다, 뭐다. 벌써 소문이 퍼진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난 더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그게 또 밉게 보이는 거지.”

“야. 넌 다른 애들처럼 그렇게 여유 있게 왜 못 살아? 나처럼 집안이 완전 망한 것도 아니고 있는 거 가지고 여유있게 적당히 열심히 적당히 하면 될 것을.”

“너 변했다. 예전엔 나보고 그렇고 그런 된장녀가 안되려면 노력하라고 했잖아. 적어도 일에서는 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굳이 힘들게 살지 말라고. 네가 가진 거 그냥 누리고 살면 괴로워할 필요 없지.”

“너...... 나한테 정 떼려고 이래? 내가 어떻게 해야 예전의 우리가 될까?”

이목은 입을 닫았다. 둘 사이에 꽤 긴 침묵이 흘렀다.

매거진의 이전글오엘마리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