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 & 브루키니
두바이 대형 쇼핑몰 입구에 보면 꽤 흥미로운 안내문이 있는데, 바로 ‘쇼핑몰 출입 복장 가이드’이다. 무릎위와 어깨선 위로의 노출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으로 한국의 하의실종 패션의 대표 아이템인 숏팬츠, 얇은 끈이 달린 스파게티 민소매 등의 차림으로 쇼핑몰을 활보하지 말라는 지침이다.
그러나 막상 쇼핑몰에 들어가면 넘치는 인파 속에 긴 팔다리를 마음껏 드러낸 금발의 미녀,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면소재 치마를 입은 아프리카 여인, 이제 막 바닷가에서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듯한 노출에 자유로운 사람들이 즐비하다.
반면,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머리카락 한올 안보이게 스카프로 동여매고, 몸에 살색이라고는 얼굴과 손뿐인, 발등조차 드러내지않은 여성들 역시 쇼핑몰 인파의 절반을 차지한다.
극과 극의 노출 수위는 해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비키니를 입고 태닝을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간혹 가족들과 놀러온 중동식 수영복 차림의 여성들도 보인다. 중동식 여성 수영복의 이름은 ‘브루키니’로, 다이빙할때 입는 옷처럼 머리부터 발목까지 모두 가리는 형태로 최근 프랑스의 해변가에서 브루키니를 입은 여성이 경찰에 제지를 당했다는 뉴스가 퍼지면서 꽤 화제가 되었다.
쇼핑몰 커피숍이나 해변에 앉아서 가만히 사람들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두바이야말로 일면에서는 다양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노출을 금기하는 무슬림들 사이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호텔 로비를 활보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도시보다도 관대한 곳이니 말이다.(호텔 엘리베이터에 좌 비키니, 우 아바야 차림의 여성과 같이 있는게 너무 자연스러운 도시다)
미디어에서 만든 이미지로 인해 중동, 무슬림은 모두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고 외부 문화에 대해 배타적일 거라고 많이들 오해 하지만 비키니와 브루키니 차림의 여성이 같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본다면, 오히려 여기 두바이에 있는 무슬림들이 더 열린 마음으로 편견에 덜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편, 쇼핑몰의 출입 복장 가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노출을 감행하는 여성동지들이야 말로 현지 문화 배려를 간과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가끔은 나 포함) 4년전에 뭣 모르고 짧은 반바지를 입고 쇼핑몰에 갔다가 현지 여성에게 “정말 미안한데, 우리 문화를 고려해서 다음부터는 신경써서 옷을 입고 다녀달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닥거렸던 적이 있다. 그 순간에는 “아니, 왜 남 옷 입는 것도 신경써?”라고 발끈했지만 내 생각이 짧았음을 바로 후회했다. ‘브루키니 여성’들이 ‘비키니 여성’들에 대해 이해하려 하는 만큼 ‘비키니 여성’들도 ‘브루키니 여성’들의 문화를 배려해야하는 것을 말이다.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을건지, 부르키니를 입을건지는 개인적인 취향 문제라고 생각한다. 브루키니 여성의 생각이 더 편협하지 않은 법이며, 비키니 여성이 더 열린 마음을 가지지도 않은 법이라는 걸 우리는 가끔 겉모습만 보고 간과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