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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Jung Apr 29. 2017

Nomad 라이프와 집

집에 대한 단상

요르단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낸적이 있다. 적막한 사막의 밤 하늘에는 별가루가 든 유리병을 깨뜨린것 마냥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날 난생처음 별똥별을 보았고, 그 속도가 가히 빨라 미쳐소원을 빌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내가 본 그 별은 몇억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수백, 수천년전 이미 사라졌을테지만, 당시 나에게는 찰나의 현실이었다.

요르단 사막에서

별 이야기가 도대체 집과 무슨 상관인가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별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해석이 다르듯 나에게‘집’이란 의미가 그렇듯 변화의 변화를 거듭하고있다.

사춘기를 기숙사 학교에서 지내면서, 부모님을 한달에 한두번 정도 뵐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학교와 기숙사에서 보내던 때였지만 나에게 집이란  부모님이 계신 곳이었다. 심지어 논산에서 안양으로 집에 이사갔을때도, 나에게는 낯설기만한안양이 그래도 집이었다.  부모님과 한 공간에 있으면서 오는 마음의 안정이 그 당시 나에게는‘집’이 갖는 의미였다.

대학 졸업후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 부모님이안산으로 이사를 가셨다. 유독 야근이 많던 신입시절 도저히 안산에서 출퇴근이 힘들어 안양 외할머니댁에 자주 가서 지냈다. 당시 나에게 집이란‘머리대고 잘수 있는곳’이었다. 할머니 집이든, 부모님 집이든 피곤한 청춘이 쉴수 있는 곳이면 그곳이 집이었다.

두바이에 와서 회사 생활을 한지 3년즈음 지났을무렵, 집에 대한 감정의 동요를 겪었다. 그렇게 늘편하기만 하고 좋던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의 ‘우리집’으로 휴가를 갔는데, ‘부모님집’에 놀러온 것같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오랜만에 만나서 기쁜 마음이 매우 컸지만, 한편으로는휴가가 끝나갈수록 끝이 보이는 휴가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두바이 ‘내집’에 돌아가서 일상을 다시이어갈 기대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작년 무작정 세이셸로 일주일동안 혼자 여행을 떠난적이 있다. 모두들 신혼여행으로 가는 섬나라에 혼자 가방 하나 들고 덜컥 떠난 그곳에서 가족이 운영하는 8개 객실이 전부인 작은 부띠끄 호텔에서 지냈다. 휴양지의 다른 호텔처럼 넓은 리셉션도,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린 멋진 식당이 있는곳도 아니고, 24시간 룸서비스는 커녕 점심먹을식당 조차 없는 작은 호텔은 세이셸에서의 내 집이었다. 렌트카를 타고 여기 저기 섬의 이곳 저곳을 떠돌다 보면, ‘자 이제 집에 가자’ 이런 생각이들더라.

세이셸에서의 일주일

나에게 집이란 결국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이 가장 중요하던 사춘기에는 한달에 하룻밤 잘수 있는 곳이라 해도 부모님이 계신 곳이 ‘집’이었고, 치열한 사회 초년병때는 전장중 머리만 닿으면 잘수 있는 그곳이 ‘집’이었다.긴 해외 생활로부터는 독립적인 내 인생을 설계하고 살수 있는 곳이 ‘집’이며,  지금은 그곳이 어디든 내마음이 쉴수 있는 곳이 ‘집’이다.

집을 단순히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순간, 인생에서 선택의 폭은 급격히 줄어든다.  ‘집’이라는유형은 투자, 마음의 안정, 보금자리 등 여러 가지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영혼까지 특정 주소지의‘집’에 옭아맬 필요가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난 이집트 카이로의한 호텔에 앉아있고,  오늘만큼은 이곳이 나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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