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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아 Nov 05. 2020

또다시 돼지라고 불리고 싶지 않아요

왜 나는 늘 먹고 나서 후회할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날씬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은 대개 불행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들은 날씬하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빙자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하죠.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에서 주변 사람들은 뚱뚱한 한나를 앞에서는 무시하고, 뒤에서는 비웃습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와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에게도 사람들은 꼭 한마디씩을 덧붙입니다.


“뚱뚱한 건 딱 질색이야.”
“난 손 못생긴 여자가 싫거든. 이거 족발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설정은 이어집니다.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My  Mad Fat Diary)>의 주인공인 레이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동년배 남자아이들에게 바로 앞에서 “돼지 년. 토 나올 듯.”이라는 험한 말을 듣습니다. ‘날씬한 기준에서 벗어난’ 여자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운 미국 영화인 <어쩌다 로맨스(Isn’t It Romantic)의 첫 장면은 이런 현실을 냉소적인 어투로 담아내고 있죠.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로맨틱 코미디에 빠져있는 어리고 통통한 나탈리에게 어머니는 단호한 어투로 얘기합니다. 


“꿈 깨. 저건 영화일 뿐이야. 우리 같은 여자로는 영화 안 만들어. 왠지 알아? 엄청 슬플 게 뻔하거든. 팝콘에 우울증약을 뿌려야 할걸. 안 그러면 관객들이 자살할 테니까.”


안타깝게도 이 영화와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이런 힐난들이 너무 익숙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도 매우 불만족한 감정을 가집니다. 항상 다이어트에 대해 생각하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폭식으로 해소하곤 하죠. 이들은 항상 잘생기고, 인기 많고, 심지어 능력도 좋은 ‘인싸’ 남자 주인공을 환상 속에서나마 흠모하여 애달파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하나의 ‘개그 코드’로 작용하곤 하죠.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하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렸을 때부터 ‘표준 체중을 넘어간다’라는 이유로 받아온 여러 가지 비난과 평가들이 지금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버스를 타고 다닐 때 동년배 아이들이 “야. 코끼리 지나간다.”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걸 듣기도 했고,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누가 “아. 돼지 냄새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친척들의 지적과 평가도 큰 몫을 했다고 합니다. “야. 너는 살 좀 빼라. 여자애가 그게 뭐냐?”라는 일말의 죄책감이라곤 없이 인사처럼 건네는 몸에 대한 평가와 “살 좀 빼면 예쁘겠는데, 왜 살을 안 빼니?” 같은 걱정을 빙자한 비난이 그녀들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분노로 변한 것이죠. 


“살을 빼면 저런 평가는 안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살을 빼고 나서 나를 놀렸던 아이들에게 내 모습을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뚱뚱한 사람은 마치 ‘조롱거리가 되어도 싸다’라는 듯, 그들을 향한 비난에 사람들은 큰 거리낌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예능과 코미디 프로그램만 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비만한 여성을 타깃으로 개그를 하고, 그들을 깎아내리곤 합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런 인식이 우리에겐 너무 익숙합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면 이상한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이 뚜렷한 것처럼 뚱뚱한 것은 ‘나쁜 것’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칼로리 앤 코르셋>의 저자인 루이스 폭스크로프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뚱뚱한 것을 혐오한다. 외모의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건강의 측면에서 비만을 우려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비만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유가 단순히 그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뚱뚱한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사람들의 경우 ‘뚱뚱하다’라는 말을 ‘가치 없다’, ‘의지가 약하다.’, ‘게으르다’, ‘둔하다’, ‘매력적이지 못하다’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이는 역사적으로 비만한 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수행자들은 성욕, 식욕과 같은 육체적 욕망은 부정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체에서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먹어서 생긴 지방을 죄악이라고 믿었죠. 실제로 유럽의 13세기의 젊은 여성들이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아 금식, 절식했기 때문에 사망률이 높았다는 가설도 존재합니다. 18세기의 프랑스 백성들은 기근으로 고통받아 점점 말라가거나 죽어가는데, 귀족들은 사치와 허영으로 몸에 살이 점점 불어났고, 이러한 현실에 시민들이 분노하여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당시 귀족들의 비만한 몸은 낭비와 탐욕의 상징처럼 여겨졌죠.


지금도 여전히 미디어에 등장하는 뚱뚱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고정적인 이미지를 깰만한 여러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죠. 코미디언 김민경은 누가 봐도 ‘표준 체중 이상’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저는 다이어트하기 위해서 운동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코미디언 박나래 역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함을 과시하듯 보여줍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들과 다이어트를 연결 지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또, 뚱뚱한 사람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모습을 ‘희화화’하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분명,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빛난다면 모두가 다 빛날 거야. 난 원래 이렇게 태어났어, 노력해서 얻은 게 아냐.”라고 말하는 팝가수 Lizzo처럼 매체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몸이 어떻든 상관없이 당당한 매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봅니다!



<또, 먹어버렸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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