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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아 Nov 16. 2020

왜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우울해질까요?

왜 나는 늘 먹고 나서 후회할까

저는 섭식장애 상담을 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합니다.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절식과 폭식을 반복하며 불규칙하게 식사를 해온 분들은 정말, 매우 우울합니다. 불안하고 위축되어 보일 뿐 아니라 대화를 주고받는 것조차 힘들 때도 있죠. 그러다 상담을 거듭하며 조금씩 안정적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하면 신기하리만치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을 더 또렷하게 하고, 상호작용도 훨씬 원활해지고, 생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이 굳게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칩시다. 그다음 장면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묘사될까요?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해져 ‘조그만 일’에도 예민하게 화를 내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 조그만 일이란 길에서 누가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든가, 일 때문에 점심시간이 5분 정도 늦어졌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전혀 개의치 않던 것들이죠. 급격히 기력이 떨어지거나 우울하고 멍한 모습도 보일 겁니다. 


의지는 호르몬을 이길 수 없어요
저는 이런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내가 제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인즉슨 그 이후부터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살이 빠지지 않았냐고 묻고, 널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모습은 앞에서 소개한 앤셀 키스의 실험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건장한 남성 참가자들을 반쯤 굶주린 상태에 빠트리자 그들은 불안과 우울증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것에도 집중하기 어려워하고 성격도 내향적으로 바뀌었죠. 참가자 중 두 명은 감정을 격하게 폭발시켰고 실험을 그만두기 위해 손가락 마디를 자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에는 여성, 데이트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던 참가자들은 실험 기간 동안 데이트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손을 잡는 등 접촉하는 행위마저 귀찮아했다고 합니다. 성욕의 급격한 저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어떤 참가자는 부엌에서 알사탕을 훔쳐 먹었고, 또 다른 참가자는 잡화점에서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로 쿠키와 과자, 물러터진 바나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기도 했습니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우리의 식사와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세로토닌의 약 95%는 장에서 만들어지며, 뇌를 제외하고 세로토닌이 발견된 곳은 장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장내 환경이 우울, 불안, 자폐증 증상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무엇을 얼마큼 먹는지가 인간의 기분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죠.


세로토닌의 불균형은 ‘입맛을 떨어트려’ 먹는 양을 급격히 줄이게 하거나 ‘무언가에 홀린 듯’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진단하는 항목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체중이 눈에 띄게 줄거나 늘었다’, ‘나는 요즘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적게 먹는다’라는 내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쁜 음식은 없다
다이어트를 할 때 불행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이어트와 음식에 관한 정보가 ‘어마무시하게’ 많습니다. 열량과 영양성분은 당연히 따져야 하고, 살 빼는 데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가려야 하며, 언제 먹을지도 고려해야 하죠. 이런 지식이 많아질수록 여러분의 식사 시간은 점점 고통스러워집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먹던 과자의 칼로리가 숫자로 둥둥 떠오르기도 하고, 마냥 설레던 치킨의 튀김옷이 공포스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심리학자 폴 로진(Paul Rozin)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너무 많은 걱정을 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정보와 금기사항이 퍼지며 부엌에 수많은 공포와 불안이 생긴다”라고 경고합니다. 저는 건강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히 먹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건강에 훨씬 이롭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컴퓨터공학자 에란 세갈(Eran Segal)이 실시한 실험에 따르면 한 참가자는 ‘당 수치가 낮다고 널리 알려진’ 토마토를 먹었을 때 혈당 수치가 급격히 치솟았고, 다른 참가자는 달걀보다 초밥을 먹은 후에 혈당 수치가 더 올랐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건강한 음식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죠. 


여러분은 오늘 음식과 관련한 어떤 정보를 들으셨나요? 글루텐부터 커피, 프로바이오틱스, 아사이베리, 브라질너트, 아보카도 오일…, 이 음식을 먹어야 살이 빠지고, 이 음식은 지방이 많고, 이 음식은 항산화 작용이 있어서 좋고 등등….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이어도 나와 맞지 않으면 건강에도, 체중 감량에도 효과가 없다고 하네요. 사람마다 장내 박테리아, 나이와 체질량지수, 운동습관, 생활습관이 모두 다르므로 모두에게 통하는 ‘다이어트 조언’을 맹신하는 것은 오히려 여러분의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또, 먹어버렸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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