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먹고 나서 후회할까
첫 직장에 들어간 은지 씨는 과도한 업무에 치여 살고 있습니다. 온종일 직장 상사들과 일에 둘러싸여 하루를 지내다 보면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가곤 합니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질 때면 자동적으로 음식이 떠오릅니다. 내 감정이 어떤지, 뭐가 힘든지 생각할 여유조차 들지 않고, 그저 지친 나를 달래주기 위한 음식 목록만 아른거립니다.
여러분은 평소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가는지 스스로 아시나요? 상담실에 오는 내담자들에게 저는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때요?”
“그때는 어떤 마음이었어요?”
그러면 마치 “어느 별에서 오셨어요?”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분이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힘들어요.”
감정은 참을수록 독이 됩니다
EQ(Emotional intelligence), 즉 정서지능이 중요하다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정서지능이란 간단히 말해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구별하는 능력이에요. 이 정서지능은 양육자, 또래 친구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달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감정을 ‘속상하다’, ‘슬프다’, ‘화가 난다’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사람은 없어요. 장난감을 오빠에게 빼앗겨 울고 있을 때 할머니가 다가와서 “아이고, 우리 ○○ 많이 속상했겠네” 하고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가 속상했구나. 내가 힘들 수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거죠. 이런 무수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심심함인지, 기쁨인지 인식할 수 있게 된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드는 감정을 참으라고, 적절하지 않다고 비난받았다면 어떨까요?
“왜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하니?”
“참아. 우는 거 아니야.”
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우리는 감정을 인식하고 느끼기보다는 억압하게 됩니다.
‘아니야. 여기서 분노를 느끼면 안 되지. 그러면 내가 너무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거야.’
내가 들었던 말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하는 거죠.
이렇게 발달한 정서지능은 여러분이 맺는 모든 관계(부모와 자녀, 연인, 친구, 사회적 관계)는 물론 삶의 질과도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정서를 명확하게 인식할수록 폭식을 덜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답니다. 내 기분이 어떤지 아는 것만으로도 폭식이 줄어든다니,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잠시만요, 일단 멈춰보세요
지금 여러분의 사고회로에는 감정과 음식 사이에 매우 강력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어요. 이 매듭은 매우 강력하며 본능적이기 때문에 저는 끊어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매듭을 느슨하게 만들라고 이야기하죠.
감정과 음식 사이의 매듭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멈춰서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식하고 싶은 욕구가 들 때 일단 멈춰보는 거죠.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이지? 오늘 제대로 일을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드는 걸까? 아니면 나는 한다고 했는데 자꾸만 지적을 당해서 속상하고 슬픈 마음일까?’
어릴 때 부모님이 해주기를 바랐던 ‘마음 읽어주기’를 내가 스스로에게 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내 감정을 어느 정도 인식했다면, 스스로의 상황이나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공감을 받을 수도 있고, 취미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여유롭게 산책을 하거나 반신욕을 할 수도 있겠죠. 진짜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한번 찾아보세요.
이렇게 곰곰이 생각해보고 실천까지 했는데도 결국 음식을 찾게 될 수도 있답니다. 음식만큼 강력한 만족을 주는 대체 행동을 찾아 감정에 연결시키기까지 매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폭식 욕구가 마구 들 때 친구나 가족에게 연락해서 해소하는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이 무수히 쌓이면, 음식으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은 결코 내 몸과 마음에 좋지 않다는 것을 자동적으로 배우게 돼요. 그러면 다음에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좀 여유가 생긴답니다.
<또, 먹어버렸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