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먹고 나서 후회할까
굶거나 음식을 제한하는 다이어트를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공감할 겁니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먹고 싶은 음식이 더 떠오르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인데 누가 먹고 있으면 괜히 먹고 싶고, 각종 음식 사진과 먹방을 넋 놓고 바라보고, 그러다 조그만 유혹에 와르르 무너져 폭식한 경험들…. 체중 감량은커녕 터진 식욕으로 다이어트 전보다 살이 더 쪄버려 좌절감에 휩싸이는 뻔하디 뻔한 결말까지. 왜 식욕은 우리의 굳은 결심을 늘 이기고야 마는 걸까요?
폭식하기 딱 좋은 상태
다이어트를 할 때 식욕이 더 강해지는 이유가 정말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미국의 생리학자 앤셀 키스Ancel Keys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네소타대학교에서 36명의 건장한 남성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정상적인 양의 식사를 제공하고, 이후 3개월 동안은 절반 정도의 음식만 주며 일주일에 총 35킬로미터를 걷게 했습니다. 이전까지 체중에 대한 문제가 전혀 없었고 음식에도 별 관심을 안 보였던 참가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기하게도 이들은 “굶주리는 동안” 음식에 매우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대화 주제는 오로지 음식이었고 “음식, 요리와 요리법에 대한 꿈을 꿨다”라고 말할 정도로 먹는 것에 온 관심을 쏟았습니다. 심지어 13명은 실험이 끝나면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죠. 참가자들은 음식을 아껴두었다가 “침대에서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공들여 먹었고, 음식 부스러기라도 남을세라 게걸스럽게 접시를 핥아댔으며, 종일 껌을 씹거나 커피와 차를 들이켜기도 했습니다.
이 ‘다이어트’의 여운은 실험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원래 먹던 양만큼을 먹어도 만족하지 못했고, 한 참가자는 “뱃속이 거의 터지겠다 싶을 정도로 우겨 넣어서 속이 메스꺼운 지경까지 먹었는데도 여전히 허기를 느낀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우리의 다이어트 경험과 정말 소름 돋게 비슷하지 않나요?
이러한 현상은 뇌와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몸의 호르몬을 통해 조절됩니다. 배가 고프면 위 점막에서 그렐린과 같은 식욕촉진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것이 식욕을 조절하는 뇌 시상하부(포만중추)에 도달해 음식을 먹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반대로 배가 부르면 내장지방에서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죠. 이렇게 우리 몸은 자연스러운 신호에 따라 평화롭게 식욕을 조절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단호하고도 강압적인 명령이 떨어집니다.
“이제 그만 먹자. 하루에 1,000kcal만 먹는 거야!”
배고프니 음식을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도 ‘다이어트 의지를 불태우는’ 주인이 계속해서 무시하면 우리 몸은 비상체제에 돌입합니다. 신진대사는 감소하고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지방은 축적되는 등 남은 열량을 보존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죠. 그와 동시에, 음식을 공급하라며 공격적인 태세로 시위를 벌입니다. 다이어트는 몸에 대한 전쟁 선포인 셈이에요.
심지어 우리 뇌는 이제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큰 쾌감을 느낍니다. 음식 섭취는 뇌의 보상회로와도 관련이 깊어요.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음식을 제한적으로 먹거나 굶는 일이 반복되면 음식을 즐거움으로 인식하는 ‘쾌감 회로’가 오히려 강하게 발달합니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 섭취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미친 듯이 음식을 갈망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폭식하기 딱 좋은 상태예요!”
<또, 먹어버렸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