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아 Dec 23. 2020

먹고 토하면 살이 안 찔 것 같아요

굿바이 식이장애

상담실을 찾아온 수영 씨는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남자친구의 영향을 받아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영 씨는 살만 빼면 남자친구가 자신을 더 사랑해줄 거라 믿었어요.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며 살을 뺐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제가 되지 않았고, 저녁에 몰아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어트 전에는 별로 입에도 대지 않았던 과자나 빵, 초콜릿 등을 저녁만 되면 한자리에 앉아 먹어치웠죠.


그렇게 먹고 나면 살이 쪘을 것 같은 마음에, 또 부은 얼굴을 보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남자친구와 가족들에게 “나 살쪘어?”, “나 이상해?” 하고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수영 씨는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 뚱뚱해 보여서 아프다는 핑계로 약속을 취소하고 울면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은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수치스러웠고, 뚱뚱해진 자신을 보고 남자친구가 실망할까 봐 겁이 났던 거죠.


그러다 어느 날, 다이어트 카페에서 ‘쉽게 토하는 방법’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꺼림칙했지만 “잠깐만 고통을 참으면 살이 덜 찐다”라는 문장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그렇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구토에 점점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쉽게 토하는 방법을 계산하면서 먹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수영 씨는 5년 동안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처음에는 폭식한 날에만 토했지만 점점 모든 음식이 거북해져서 매끼니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수영 씨는 고립되었습니다. 토하는 걸 들킬까 봐 창피한 마음에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어쩌다 남자친구와 만나면 화장실에서 몰래 토하고서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왔죠.

 

점점 수영 씨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걸 느꼈습니다. 얼굴은 항상 부어 있었고 음식을 씹을 때면 턱관절에 통증이 몰려왔어요. 머리카락도 자꾸만 빠지는 것 같았죠. 토하고 난 밤이면 온갖 감정이 몰려와 울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생리는 멈췄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피곤함에 찌든 일상을 반복했죠. 그렇게 수영 씨는 상담실을 찾아왔습니다.




왜 저만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걸까요?

다시 규칙적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폭식과 구토의 빈도는 많이 줄었지만, 수영 씨는 상담을 받는 동안에도 늘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다들 날씬하고 예쁘고 다이어트도 다 성공하는데… 저는 너무 한심한 것 같아요. 토하는 것도 한심하고. 저만 의지가 약하고 이상한 걸까요?”


또 이런 말도 자주 했습니다.


“다들 연예인 보면서 부러워하고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하지 않나요? 제 주변을 보면 대부분 그러던데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몸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이 머리로는 알겠는데, 확 와닿지는 않아요. 저는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서 다리가 두껍다, 뱃살이 많다, 저런 몸매로 어떻게 저런 옷을 입냐, 이런 평가들을 솔직히 머릿속으로 하거든요.”


수영 씨는 가족, 남자친구, 저에게 와서 몇 번이고 확인을 받은 뒤에야 무리하게 살을 빼기 위해 더는 토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오히려 살을 빼기 위해 자신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주변 사람들도 피곤하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죠. 그러나 이후로도 수영 씨는 많이 불안해하곤 했습니다.


“폭토(폭식과 구토)를 안 하니까 건강은 정말 많이 좋아졌고 덜 피곤한데, 아직도 음식을 그대로 소화시킨다는 게 너무 불안해요.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금방이라도 살이 확 쪄버릴 것 같아요. 이제 손 넣어서 토하는 게 얼마나 안 좋은지도 알고 토한다고 다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하지 않지만, 먹고 나서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요.”


여전히 “다이어트는 의지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살을 빼기 위한 수많은 규칙을 나열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의 통제력이 부족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탄수화물은 줄이고 단백질은 늘리기, 저녁 식사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기, 정크푸드와 밀가루 음식은 절대 금지 등등 규율이 많아질수록 체중을 감량하고픈 사람들이 느끼는 죄의식은 커집니다.


몇몇 다이어트 업체에서는 “3개월 안에 10kg 무조건 감량” 이런 타이틀을 내걸고 상품을 판매하며 거의 모든 음식을 제한합니다. 이런 제한이 익숙한 내담자들에게 “식이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종류에 상관없이 음식을 꼬박꼬박 먹어야 해요”라고 말하면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을 호소하곤 하죠.


“선생님, 이런 건 절대 먹지 말라고 했어요.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요

건강에 좋은 음식도 적게 먹으면 몸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엄격한 식사 제한으로 신체 일부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경제적 손실도 발생합니다. 다이어트용 음식을 배달하느라 돈을 쓰고, 폭토용 음식(주로 다이어트할 때는 못 먹는 음식)을 사기 위해 또다시 돈을 엄청나게 쓰죠. 돈이 이중으로 드니 식비가 남들의 2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도 나갑니다. 폭식할 음식을 사기 위해 카드빚까지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가 식이장애 때문에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도 아마 이런 마음이었겠죠.


저는 폭식하고 토하고 굶고 강박적으로 운동하고 심한 다이어트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단순히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난스럽게 다이어트하네”라고 치부하기에는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이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돈까지 탈탈 털어가면서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있다면, 그 개인을 탓할 게 아니라 날씬한 몸을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가치를 매기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지금 폭식과 폭토, 다이어트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장 멈추고 도움을 청하시길 바랍니다. 저에게도 여전히 후유증이라고 할 만한 증상들이 존재합니다. 먹토를 반복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관절은 더 약해지고, 체력은 떨어지고, 치아는 손상되고, 소화기관은 망가집니다.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남아요. 하루빨리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리상담을 받고 싶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