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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아 Jan 18. 2021

오래오래 행복하게 먹기 위해

참다 참다 폭식하는 그 마음

날씬한 몸이 보기 좋음의 기본값인 이 지구에서 우리는 매일 다이어트 강박을 느낍니다. “살 쪘네”, “살 빠졌네”는 당연한 인사가 되었고 간헐적 단식, 원푸드 다이어트, 아이돌 식단 같은 다이어트 콘텐츠가 끝없이 떠돕니다. 누구를 만나도 어디를 가도 무슨 옷을 입어도, 반드시 살을 빼야 할 것만 같습니다.


다이어트가 목표라면 안 먹는 게 답입니다. 하지만 우린 늘 먹죠. 배고파서 먹고, 스트레스 받아서 먹고, 놀기 위해 먹습니다. 늦은 밤 야식을 때려 먹고, 맵고 짠 음식을 위장으로 쓸어 넣습니다. 술 먹고 안주 먹고 술 먹는 무아지경의 세계에 자신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낍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지만 우리는 압니다. “맛있는 건 고칼로리”라는 걸.


혹시 “다이어트해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나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휘핑크림 올린 카페모카를 떠올리나요? 아침, 점심은 대충 때우고 저녁에 와르르 폭식하나요? 많이 먹고 나면 죄책감이 들어 후회하지만, 이를 반복하나요? 그렇게 매일 먹고 후회하는 간헐적 다이어터로 살고 계신가요?


먹는 건 죄가 아닙니다. 음식이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합니다. 추운 겨울 이불 덮고 드라마를 보면서 야무지게 까먹는 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면서 마시는 맥주 한잔, 진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는 부드러운 슈크림빵…. 상상만으로도 벌써 행복해지는 그 기쁨, 포기할 수 없죠.


하지만 기쁠 때, 슬플 때, 화날 때, 외로울 때 등등 오욕칠정의 모든 감정을 죄다 먹는 것으로 해소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음식이 주는 기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반드시 직접 실체를 마주하고 치유해야 할 마음의 상처라는 것도 분명 있으니까요. 그 상처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마른 몸에 집착하는 이 미친 세상일 수도 있고, 딸을 인형처럼 가꾸고 통제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엄마일 수도 있습니다. 완벽주의와 낮은 자존감일 수도 있고, 극심한 외로움일 수도 있죠.


이유가 무엇이든 온갖 감정을 음식으로만 해소하다 보면 폭식과 다이어트의 무한 반복의 굴레에 빠지기 쉽습니다. 많이 먹으면 그만큼 살이 찔 테고, 마른 몸에서 멀어질수록 죄책감을 느껴 다이어트에 집착할 테니까요.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다이어트에 성공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네, 단언컨대 불가능해요. 다이어트에 집착하면 할수록 음식에 대한 강박은 오히려 커지고, 그 불행한 굴레는 결국 식이장애로 이어집니다.



저는 식이장애를 겪었던 식이장애 전문 상담사입니다. 사춘기 이후로 체중에 대한 신경은 늘 써왔지만,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결심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활발하게 놀러 다녔던 저는 다이어트를 계기로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급식을 먹으러 갈 때도 혼자 교실에 남아 사과, 고구마, 우유, 밤 등만 먹으며 지냈죠. 스무 살 무렵에는 중학교 1학년 때 보았던 몸무게를 찍게 되더군요. 바지는 점차 헐거워졌고, 음식에 대한 강박은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이 아니면 아예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원하는 만큼의 점수를 얻지 못하자 체중에 더욱 집착했습니다. 첫 다이어트 때와는 달리 몸은 제 의지대로 되지 않았고, 한번 터진 폭식은 제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학사경고만 면할 정도의 성적으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저는 매순간 음식과 살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불어난 살을 도려내고 싶은 심정이었죠.


6년간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과 폭식증(신경성 폭식증)을 넘나들면서도 저는 이것이 심리적인 문제라고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다이어트 방법이 잘못되었다 생각했고, 내 의지가 약해서 자꾸 폭식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지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식이장애는 ‘다이어트 병’이 아닙니다. 다이어트로 시작될 수는 있으나 문제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식이장애는 내 마음을 봐달라는 신호랍니다. 미움받기 싫은 마음에 악착같이 살을 빼기도 하고, 인정받기 위해 죽을 만큼 힘든데도 다이어트를 못 놓기도 하죠. 때로는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음식에 대한 거부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또, 먹어버렸습니다>는 이러한 제 경험과 상담 사례를 통해 배운 것들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너무 많이 먹거나 먹지 않는 현상에 얽힌 다양한 심리를 묘사했고, 음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담았어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왜 폭식하고 다이어트에 집착하는지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음식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게 먹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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