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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Mar 04. 2020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나의 글쓰기 연대기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 나의 글쓰기 연대기



90년대 말, 나는 교감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교무실에 불려 갔다. 교감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안부를 간단히 묻고는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며 외치셨다. 이것이 그라데이션 호통인가. "너어는! 왜! 글을 안 쓰는 데에! 글을 안 쓰면 똥멍청이된다 윤아야! 똥멍청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나 3학년이었나. 20년이 넘게 지난 일인데도 귓가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눈 앞에 선생님의 표정이 생생하다. 그 당시 학생들의 월간 문학지 같은 곳에 선생님의 추천으로 종종 내가 쓴 시나 산문 등이 실렸고, 문학을 사랑하는 교감선생님께는 그런 내가 작게나마 빛나는 학교의 자랑이었나 보다. 처음엔 써뒀던 글들을 제출해서 등재가 되었지만 나중엔 등재하기 위해 써야 하는 건가 싶어 살짝 귀찮아라 했다. 본의 아니게 세이브 원고가 떨어졌으니 제출이 늦어졌고, 그리하여 교감선생님의 호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이사 때문에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까지도 애정과 당부의 말을 들었다. 글 쓰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똥멍청이가 되지 말라고.


이후 밀레니엄 시대가 열렸다. 모두가 온라인에 개인 홈페이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던 때, 나도 일기장에 열심히 글을 남겼다. 오늘 친구랑 떡볶이를 먹었는데 맛있었다는 내용도 있었고, 학교에서 친구와 다퉜는데 화가 난다는 말을 감정에 복받쳐서 적어 내려가기도 했었다. 감동받았다고 읽었던 책 구절을 정성스럽게 타이핑 쳤던 일기도 있었고, 그때 그 감성에 맞게 '힘든데 무엇 때문에 힘든지는 안 알려줌'류의 글들도 정말 많이 썼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블로그에 흥미를 느껴 포스팅에 온 정성을 쏟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땐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던 때라 지금처럼 체험단이니 홍보글이니 하는 플랫폼은 매우 드물었고, 그 와중에 나는 맛집을 필두로 하는 체험 일상 블로그 포스팅으로 일일 방문자수를 꽤나 이끌어냈다. 기승전결 스토리를 나름 재밌게 쓰려고 신경 썼더니 LG 노트북도 블로그 포스팅용으로 제공받았던 전적이 있다. 당시 동기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강의실에서 노트북을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블로그 후기를 무기로 삼아 무료체험을 요구하는 '블로거지'들이 급증하면서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 싫어 점점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써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쯤 되면 어릴 때 문학지에 실렸던 것 정도 빼고는 남들도 다 하는 일상 수준 같은데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싶을 수 있다. 맞다. 돌이켜봤을 때 글쓰기는 내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건 대단하고 엄청난 활동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글을 써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글쓰기 연대기에서의 암흑기가 있었다면, 이공계 전공을 졸업한 이후 일 배우느라 바빴던 사회초년생 시기 정도였다. 이만큼 일상에 녹아있다고 할 지라도 스스로에게 이 질문은 가끔 하고 있다. 마치 현악기의 줄 튜닝을 하듯이. '왜 나는 글을 꾸준히 쓰려고 하는가?'


예능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한 말이 있다. '말과 글을 써봐야 자기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게 된다'라고. 누군가가 쓴 글이나 영화 등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때는 마치 공감하고 있는 그의 의견이 곧 내 의견인 것 같고 그 수준에서 멈추게 되는 것이다. 강원국 작가님도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출력'하라고 하셨다. 그동안은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나의 글쓰기 목적이 두 분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되었다. 특히 양질의 정보들이 큐레이션을 거쳐 입만 열고 있으면 밀려 들어오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이젠 더 이상 정보를 찾지 못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홍수 속에서도 나만의 기준으로 또 컨텐츠를 선별하고, 내 생각정리를 출력이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고여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게 내가 꾸준히 글을 쓰려고 하는 목적이다. 내가 등단한 작가들처럼 유명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려고 목적을 유념하는 이유는 글쓰기가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김영하 작가님이 어느 북토크에서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기가 했던 일과 자기감정을 서술하는 순간부터 그 감정을 통제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억누르는 게 아니라 올라서서 지켜보는 것이다. 차분하게 무엇을 논리적인 문장으로 쓰는 순간부터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게 글쓰기라는 행위가 가진 굉장한 힘이자 의미이다'라고.


심심할 때마다 적는 정도의 취미 글쓰기이지만 이를 유지함으로써 달성한 자잘한 목표가 몇 있는데 하나는 각자의 목적이 달라도 꾸준한 글쓰기의 힘을 믿는 연대가 생겼다는 것. 온라인 글쓰기 모임 '씨리얼노트' 이야기이다. 지인 몇 명을 반 강제로 꼬셔서 만든 게 벌써 1년이 지났고, 인원수는 배가 넘어갔으며, 모인 글은 120편에 가까워졌다. 그들이 있었기에 몸을 꼬고 아무 말을 뱉는 것 같아도 이만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달성한 목표가 있다면 '김윤아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BI(Brand Identity)가 대내외적으로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는 것. 역시 꾸준함이 답이다.


이어 앞으로 달성하고 싶은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하나는 씨리얼노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간단할지라도 확실하고 합리적인 매뉴얼이 뒷받침해준다면 재난급 어려움이 휘몰아쳐도 응용하고 버틸 수 있다고 장황히 포부를 밝힌다. 이번에는 뉴스레터 형식으로 글 발행을 알리는 형태를 추가한다고 이미 SNS상에 선포했으니 이 또한 자리 잡아가도록 유지에 힘쓰고 싶다. 계속 언급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 '씨리얼노트'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함께 할 수 있다!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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