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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Feb 05. 2020

혹시 지금 화난 건 아니죠?

웃음에도 연습이 필요하더라

혹시 지금 화난 건 아니죠?

- 웃음에도 연습이 필요하더라



"난 사실 너에게 처음엔 다가가기 어려웠어. 무표정이 무서워서."

"친해지고 나니 아니란 걸 알았지만, 매일 기분이 안 좋은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니까."

"아주 얼음공주셔. 이야기할 땐 그렇게 활짝 웃을 수 있으면서 평소엔 왜 안 웃어?"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들었던 내 첫인상 이야기이다. 멀리서 지켜본 내 모습은 평소 무표정에서 좀 더 차가운 표현에 가까운 분위기를 내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는 말이었다. 소위 말하는 '싹수없는' 인성인가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건 아니고 평소 무의식적으로 있는 무표정이 꽤나 날카롭거나 차가운 상태일 때가 잦다는 평가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절대로 일부러 만든 모습은 아니기에 그게 내 매력포인트겠거니라고 여겼다. 인상을 쓰거나 째려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욕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있는데 굳이 왜 무표정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기도 했고. 게다가 어릴 땐 '얼음공주'라는 표현도 은근 마음에 들었다. 소녀시대의 제시카, f(x)의 크리스탈, 그리고 레드벨벳의 아이린처럼 하얀 피부에 시크한 무표정으로 시선처리를 하는 아이돌계의 얼음공주들의 이미지와 내가 겹치는 것 같아 슬쩍 그런 캐릭터를 고수하기도 했다.


"누나, 근데 혹시 오늘 안 좋은 일 있었나요?"

"어디 아파요? 컨디션 괜찮아?"

"윤아씨, 생각보다 되게 안 웃는 거 알아요? 본인은 잘 모를 것 같아."

성인이 되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고, 세상엔 정말 별별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를 안팎으로 경험하면서 함께 일했던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에게 들었던 내 첫인상 이야기이다. 소중하게도 대부분의 동료들은 진심으로 애정을 담아 해 줬던 조언이었다. 꼰대 잔소리는 없었다. 한두 번 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답하고 흘러 넘겼다. 저 원래 그런다고,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화 안 났다고. 안 아프다고. 오해하지 마시라고.


그런데 자꾸 오해가 생겼다.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바쁜데 응대하지 않을 때까지 표정관리를 하는 건 내 체력과 에너지가 아깝고 보호자가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꼭 쓰지 않아도 되는 날에도 마스크를 자주 썼다. 눈만 잠깐 웃으면 되거나 그것도 대충 넘길 수 있으니까. 억지로 미소 짓지 않아도 되는 내 치트키였다. 더군다나 돌이켜봤을 때, 내가 웃음을 잃은 사람도 아니고 평소 대화할 땐 잘만 웃으니까 무표정이 차가워봤자 뭐 얼마나 차갑게 느껴지겠나라고 여겼던 기억도 있다. 자연스레 오늘 하루는 어떠시냐고 병동에 입원한 환자분께 손 잡으며 인사하는 내게 브라보를 외치시던 수간호사 선생님도 계셨으니 평소 내겐 전혀 문제 되지 않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왜 깨달음은 어느 순간 '유레카!'하고 갑자기 오는지, 그렇게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요즘 들어 의식적으로 고쳐야 하는 버릇임을 인정하게 됐다. 그것도 단계를 밟았는데 지인이 몰래 동영상으로 찍어준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타인과 꼭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영상 속 나는 매우 건조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 친구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 상황에서 나는 영상을 찍고 있는 건 몰랐으니 순수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었는 데다가 의식적으로 웃고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내심 충격적이었다. 난 아까 대화하면서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한 껏 올리고 있었는데? 이게 노력한 표정이라면 평소엔 얼마나 차갑디 차갑다는 걸까.


당장 휴대폰의 전면 카메라를 켰다. 이쁘게 나오기 위한 셀카용 미소 말고 증명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고 웃어보았다. 눈이 웃으면 입이 안 웃고, 입을 웃으면 눈이 안 웃고, 다 신경 쓰자니 얼굴 근육이 이상해진 기분이 들었다. 볼은 터질 것 같고, 운동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어떤 근육을 무슨 동작으로 써서 미소를 지어야 하는지 새삼 어색해서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난 학생 때 연극은 어떻게 했던 걸까,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들이 관객에게 잘 전달은 됐던 걸까, 다 필요 없고 난 나이 서른 넘도록 자연스럽게 웃는 걸 잘할 줄 모른다고 지금? 세상에. 웃음은 그냥 웃으면 되는 줄 알았다. 웃음에도 연습이 필요한 거구나. 요즘 세상은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좀 덜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한 직업군인 승무원이나 아나운서들이나 입에 젓가락 물고 미소 연습을 하는 줄 알았는데! 스스로를 웃음에 박한 삶으로 입히며 살고 있었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중간중간에도 앞에 둔 거울로 슬쩍 내 표정을 보면 아직 싸늘하다. 입꼬리 한 번 더 올려보고 씰룩.


웃음치료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카톡으로 부모님이 보내주실 것만 같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듯이. 국내 학술지에 나타난 웃음 치료 효과에 대한 메타분석(강지숙, 2017) 연구를 보면, 7가지의 영역 중 (사회적, 생리적, 신체적, 신체화, 정서적, 정신적, 행동적) 정서적, 정신적 영역에서의 웃음치료 효과 크기가 제일 컸다. 세부영역별 효과 크기에서는 불안, 정신적, 우울, 자존감 이외에도 통증, 만족도, 사회적 지지와 스트레스 영역에서도 값이 높았다. 또한, 주 당 운영하는 웃음치료의 횟수가 많을수록 그 효과의 크기가 컸으나, 단순히 총 횟수, 회당 운영시간, 총시간이 길어질수록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초기에 연속적인 프로그램의 적용이 그 효과를 더 크게 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 위 연구의 결과를 발판 삼아 문제 인식을 한 최근, 초기 대응에 집중하기로 했다. 매일 1초씩 영상을 찍어서 이어 붙일 수 있는 '1SE'라는 무료 앱이 있는데, 그 앱으로 매일 웃는 표정을 연습해서 영상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아직 데이터가 많이 쌓이진 않았지만 1초는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고 미소를 노력하기에는 나름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매일 잊지 않고 영상을 남기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인스타그램에 15초짜리 스토리 영상 올리는 건 그렇게 쉬운데, 이 건 왜 자꾸 까먹는지! 습관을 들이고 있다.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서 모인 6분짜리 영상은 내게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까 은근히 궁금하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내가 웃음을 지니는데 연습이 필요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는 데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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