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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Jan 08. 2020

채찍 인간, 당근 인간

무엇이든 너를 품어주는 방향으로

채찍 인간, 당근 인간

무엇이든 너를 품어주는 방향으로




앞서 밝혀두는데 이 글은 인터뷰지로 펼쳐 낼 <원동력 레시피> 매거진의 프롤로그가 될 뻔했다. 어쩌면 나중에 다듬어서 에필로그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따면서 꼭 하고 넘어가는 몇몇 공통 질문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즉 당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이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모든 부분에 걸쳐 교칙이 빡세기로 동네에서 유명한 학교였다. 고교 평준화, 일명 '뺑뺑이'가 도입되기 전에는 지역의 골칫덩어리 학생들만 모여 있는 '꼴통 학교'로 불렸다고 했다. 그 시절엔 수업시간에 잠자는 것을 선생님께 지적받았다고 학생이 형광등을 뽑아 깨서 선생님을 위협했다더라는 일화는 내가 학생일 때도 매년 수업시간에 회자될 정도였다. 그러던 이 사립학교가 뺑뺑이의 시작을 방패 삼아 학생 물갈이를 시도한 것이다. 0교시부터 야자, (지금은 없어진) 놀토와 방학 중까지도 자율학습을 시켰고, 공부에 방해된다고 오해받는 요소들은 죄다 칼 같이 잘랐다. 귀밑 3cm 두발 규정이 대표적인 예다. 학창 시절엔 다들 그 정도는 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 외에도 학교가 쥐고 있는 채찍은 많았다. 뺑뺑이로 들어온 학생들과 이전 제도 때 들어온 학생들은 건물을 다르게 써서 서로의 물들임을 물리적으로 차단시키려 했(다고 하)고, 자율학습으로 학교에 학생들 발을 묶어두니 교육열 높은 분당 땅에서 학부모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결국 고교 평준화가 시작된 지 3년 만에 우리 학교는 특목고 입시에서 떨어졌거나, 입시를 준비하지 않았지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1 지망으로 써서 몰리는 평준화 아닌 평준화 바람을 만들어 물갈이에 어느 정도 성공하게 된다. 나도 그 물갈이에 한몫 더한 학생이었고. 

 

위에서 나는 우리 학교가 쥐고 있는 채찍이 많았다고 언급했다.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는 상위 몇 % 안에 드는 학생들만 다른 교실에서 야자를 했다. A, B, C반으로 불리기도 했고, 가, 나, 다반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성격은 같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전교 6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을 전교 석차로 줄을 세워 야자반을 나눈 것이다. ABC반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패배감을 느꼈을 것이다. C반은 B반을, B반은 A반을 보며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전교 1등이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예상하는 바와 같이 야자 교실의 자리 배치가 석차 순이었기 때문이다. 시험을 한 번 보고 나면 자리 배치도가 바뀌었고 저 자리에 앉는 아이가 1등이었으며, 내 자리는 몇 등인지 다들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급식실이 작다는 이유로 점심시간을 나눠서 순차적으로 급식을 배식받았었는데, 역시 당신이 예상하는 바와 같이 야자반 순서대로 배식 순서를 정했다가 지역신문에 비판적인 기사로 공격받아 그 순서가 순수 1반으로 변경되었던 적도 있다. 후에 카더라에 의하면, 야자 ABC반에 들어가지 못한 자식의 학부모가 배 아픈 마음을 담아 그 지역신문의 기자로서 '급식도 성적순인가요'류의 제목으로 글을 뽑아냈다더라는 이야기가 돌았었다.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튀어나오는 채찍이 벌써 몇 개인가.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우리는 이 채찍에 길들여졌던 것 같다. 가끔 성적순으로 만들어진 자리 배치에 학생 인권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들리긴 했으나 학생들 사이에서조차 그 소리는 더 높은 반에 가지 못한 자의 설움으로 치부되곤 했다. 나는 이과생이었는데 고3이 되던 해에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전교 상위 석차(대략 전교 30등 이내)에서 이름을 날리는 친구들을 한 반으로 몰아서 특별히 관리하기 위해, 예체능 선택과목을 은근하게 하나로 몰려고 슬쩍 이야기를 흘리다가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선택받지 못한, 전교 30등 이내에 들지 '못'한 학생과 그들의 부모에게 그 사실이 발각되어 교무실이 온통 항의 전화로 시끄러웠다. 결국 선생님은 야자 ABC반(대략 60여 명)을 로비에 한 데 모아서 공표했다. "너희가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을 테니 공개적으로 말하겠다. 다음 모의고사와 내신을 반영해서 고3 이과(생물2선택반)반의 1등부터 30등을 예체능 체육반으로 모으겠다. 억울하면 공부하던가." 그때 마블 영화가 성행했다면 우리 반은 어벤져스반이라고 불렸을 거다. 그렇게 고3이 되었고 그 한 해 역시 치열하게 채찍으로 나를 뛰게 만들었다. 어쩌다 다음 시험에서 야자반 배치가 아래로 바뀌게 되면 그렇게 이를 악물고 스트레스받았다. 


뱀이라도 머리가 되어야 한다고도 하던데 나는 어떻게든 용의 꼬리라도 되어보려고 A반에 목을 맸다. 용의 머리를 보며 자존감을 스스로 들쑤셨는데 그게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큰 원동력이었고 한 명이라도 제치고 올라가기 위해 채찍을 들었다. 모두가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함께 공부하던 한 친구가 부모님 허락 하에 야자반을 나와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기로 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아쉬워 이유를 물었더니 본인은 본인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위축되고 나아갈 힘을 잃는다고 했다. 자신이 무리에서 성적이 뛰어난 편에 속해야 잘한다 잘한다 하고 힘을 받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했다. 그 당시에 친구에게 나는 그러면 안주하고 나태해져서 오히려 공부를 안 하게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들 나 같은 줄 알았거든. 오직 채찍만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줄 알았거든.


사실 정답은 없다. 채찍 인간이면 어떠하고 당근 인간이면 어때. 적기적소에 본인에게 어떤 것이 더 효과가 좋은지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이미 깨어 있는 사람이다.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맞는 것이 목표였던 어린 고등학생보다 떡국을 몇 그릇 먹은 지금의 나는 그 방법이 무엇이든 당신을 보다 품어주는 방향이길 바란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레스피는 일의 수행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큰 자극(보상 또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42년 쥐의 미로 찾기 시험에서 보상(먹이)을 1개만 주는 A 집단보다 보상을 5개를 줬던 B 집단이 더 빠르게 출구를 찾는데 성공했고, 반대로 A집단에게 5개로 늘여주고 B집단에게 1개로 줄여주자 A집단이 처음부터 5개를 받았던 B집단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탈출에 성공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역시 5개에서 1개로 보상이 줄어든 B집단은 처음에 1개만 받았던 A집단보다 더 낮은 수행 능률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그는 당장의 절대적인 당근 또는 채찍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지금이 얼마나 더 큰 자극인지를 보여주는 상대적인 양이 일의 능률을 향상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크레스피 효과'를 입증하게 되었다. 고로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오직 채찍이라면 다음을 위해선 더 강하고 큰 채찍을 휘둘러야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오직 보상만이 당신에게 힘을 부여해준다면 한 때는 들판의 꽃반지로도 충분하던 것이 다음엔 다이아몬드를 가져도 별 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채찍이 당신의 심신을 건강하게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나를 병들게 하기가 더 쉽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제일 중요한 건 '적기적소'에 '나를 품어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유독 길들여진 채찍 중독이라는 셀프 감옥을 종종 깨고 있듯이. 반면에 당신은 나와 달리 당근 중독에 갇혀 있지는 않는지. 


<원동력 레시피>에서 당신의 원동력에 대해 물어볼 때도 나는 그들이 가진 원동력이 인터뷰 이후에는 당근과 채찍이 적절히 버무려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길 바란다. 적기적소에 당신을 품어주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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