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후보로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유력한 기억은 엄마 등에 업혀 손가락을 빨고 있는 장면이다. 엄마는 손가락을 빠는 나를 두고 이웃과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눴는데, 그다지 좋은 소리가 아니라고 느꼈는지 애착 베개로 얼굴을 야무지게 가리고 손가락을 참 맛있게도 빨았다. 엄마의 등은 참 아늑했다.
다음 후보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 울고 있는 나를 엄마가 안고 달래준 기억이다. 잠시 시장에 다녀온 엄마는 잠바도 벗지 않고 ‘엄마 잠깐 장보고 왔지~ 늦었네’ 하며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손으로 놀란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서러운 울음을 삼키며 난 괜히 엄마 품으로 더 파고 들었다. 둘 다 대단한 기억은 아니지만 어쩐지 떠올리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유아시절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 시절 이후에도 나에게 남아있는 몇몇 유년시절 기억이란, 사실 대단히 임팩트 있는 장면들은 아니다. 기억 속 그 시절의 아빠는 TV를 보는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거실에서 잠든 나를 안아 방으로 데려다 준다. 기억 속 엄마는 부업으로 바느질을 하고, 놀다 다쳐 울고 있는 나를 품에 안고 달래 준다. 도대체 왜 아직까지 내 기억에 남아있을까? 의문이 드는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의 장면들이 조각조각 내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하는 이 시절 추억들을 아이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참 아쉽고 허무하다. 내 인생에서는 잊혀질 수 없는, 몽글몽글한 추억을 아이도 온전히 기억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아이는 모두가 그렇듯 무수한 추억을 그 위로 덧칠해 가며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몇 개의 단편적인 장면만 기억하게 되겠지. 본인의 선택이 아닌 랜덤으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문득문득 아이를 대하기가 아주 조심스러워진다. 아이의 무의식이 어떤 순간을 선택해 기억에 남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며 대부분 최선을 다했는데, 잠시 지쳐서 서운하고 서럽게 했던 장면들을 편집해 기억해 남기면 어떡하지? 그럼 좀 억울할 것 같은데. 몸이 피곤해서 아이에게 태블릿 PC를 쥐어주고 누워있다가도, 아이의 실수에 버럭 짜증을 내다가도 나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래 이런 순간이 아이에겐 강력한 기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그렇게 매순간 완벽할 수 없으니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듯 아주 사소한 순간 아이에게 괜히 더 다정해지곤 했다. 넘어져서 놀라 달려온 아이의 등을 쓰담쓰담하며 달래주고,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볼을 부비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곤히 잠든 아이의 귀에 '사랑한다' 속삭이거나 깔깔 웃고있는 아이를 품에 꽉 안아준다.
여행지 좋은 호텔에 가서 수영을 한 기억, 놀이공원에 가서 불꽃놀이를 본 기억... 남겨지길 바라는 추억은 많지만 어차피 다 기억할 수 없다면 일상의 아주 사소한 따뜻함으로 어린시절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