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기적

by 제윤김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순간은 계획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다. 그저 작은 우연들이 들어맞았을 뿐인데 돌이켜보니 엄청난 기적인 것이다.

나에게는 25년 전 강원도의 밤하늘을 본 기억이 그런 선물 같은 순간이다. 교회 여름 수련회로 어느 강원도 산골의 작은 교회를 찾았었다. 3박 4일 정도 그곳에 머물렀는데, 밤이면 교회 앞 들판에 나가 모닥불을 피어놓고 대화를 하거나 기타 연주에 맞춰 찬양을 불렀다. 마지막 날 조금 늦은 시간 들판에 나가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이게 웬걸.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밤하늘에 별이 모래를 뿌린 듯 흩뿌려져 있는 것 아닌가. 은하수가 보이는 듯도 했다. 아, 대한민국 밤하늘에도 이런 별을 맨눈으로 볼 수 있구나.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연신 감격하며 친구들과 하늘을 올려다봤다.

돌이켜 볼수록 그날의 밤하늘은 기적이 맞다. 그 이후 25년이 흐르도록, 손톱만큼이라도 비슷한 밤하늘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나 스위스 같은 자연 경관이 좋다는 곳에 여행을 가서도 ‘다시 한번 그런 밤하늘을 보고싶다’는 기대를 해봤지만, 그렇게 별이 흩뿌려져 있는 밤하늘은 보지 못했다. 이번에 가족들과 호주 여행을 하면서도 조금 기대를 하며 블루마운틴 별빛 투어를 신청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는 호주이니, 운이 좋다면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 비가 왔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이드는 다음에는 별을 보기 바란다면서 별을 볼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을 알려줬다. 핵심은 이렇다. 달이 없거나 그믐에 가까울 때, 구름이 없을 때, 여름보다는 겨울에... 어쩌면 뻔한 조건들을 듣는데 깨달았다. 25년 전 그 밤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그 모든 조건이 기적처럼 맞아떨어진 밤이었다는 것을.
있는지 알지도 몰랐던 강원도의 산골의 작은 교회. 장마가 지나 구름이 없고 달이 없던 그날 밤 내가 거기 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밤하늘을 본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는데, 기대하지도 않던 집 앞 공원에서 또 다른 기적을 만났다. 그날 아침부터 36년 만에 정월보름의 개기월식이 있을 것이라는 기사들을 보면서도 별 관심은 없었다. 산책에 나선 것도 날이 따뜻해졌으니 오랜만에 나가볼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원에 가는 길에 보니 달이 점점 가려지며 붉어지고 있었다. 구름에 끼어 보였다 안보였다는 반복하더니 공원에 도착하니 달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점점 흐려지던 달은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자 오히려 선명하게 붉어졌다. 밤하늘에 탁구공이 떠 있는 것도 같았다. 흥분해서 여기저기 카톡 메시지를 보내며 지인들에게 하늘을 보라고 했는데, 막상 구름에 가려지거나 방향이 안 맞아서 못 보는 지인들이 많았다. 몇십 년 만에 있을까하는 우주의 이벤트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정월보름 개기월식은 46년 후에 있을 것이라니. 살아생전 온 가족이 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이에게 속삭였다. “우리 가족은 지금 엄청난 기적의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거야. 꼭 기억해야해.”

25년 전 그 밤처럼, 또 하나의 기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