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구성작가의 일상 구성
올해로 한국 나이 마흔이 되었다. 30대까지는 어떻게든 청년이라고 우겨볼 만했는데, 이제는 '중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나이다. 주름도 흰머리도 꽤 늘어서 아 이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하는 요즘이다.
남편과 종종 과거로 돌아가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을 하곤 한다. 남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공부를 열심히 해 더 좋은 대학을 가고 싶다거나 더 성공하고 싶다거나 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다시 어려진다는 건 엄청난 기회인 것이다.
그와 달리, 난 이런저런 상상을 해봐도 과거로 별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지금보다 더 잘 살 자신도 없고 어른이 아닌, 혹은 어른이 되었어도 미성숙한 그 시기를 다시 살아내고 싶지가 않다. 너무 고달프고 힘들지 않은가.
내가 '어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데.
난 이제 어엿한 메인작가이고 든든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도 있고, 전세라 해도 내 몸 편히 쉴 집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이룬 것인데 '리셋'을 시킨단 말인가.
어른이라서 다행인 순간은 얼마든지 있다.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고 사고 싶은 걸 마음대로 사도,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귀찮은 일을 은근슬쩍 떠넘길 후배들도 많아졌다. 막내 때 메인언니가 '억울하면 메인 해'라고 했었는데 그 메인이 되는데 15년이 걸렸다. 그러니까 그 억울한 시기로 함부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어른이라서 다행인 순간이 이렇게 유치하다니,
내 마음은 아직 10대 철부지인가 보다. 그래서 40이라는 숫자를 떠나 내가 과연 '진짜 어른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는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기적인 이유로 싸우고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을 모르는 나이만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쯧쯧 저 나이를 먹고..."
세상에 '나잇값'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나잇값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얼마 전 꽤 어른 같은 하루를 보냈다. 친한 선배와 미쉐린 식당에서 1인당 10만 원이 넘는 고급 코스 요리도 먹고 전시회에 가서 해외 유명 거장들의 그림도 봤다. 마음에 드는 '뮷즈'까지 마음껏 쇼핑을 한 만족할만한 하루였다. 교양 좀 갖춘 성인의 하루라 할 수 있겠다.
일정을 마치고 들뜬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앳된 얼굴의 학생이 몇 번 버스를 타느냐고 물었다. 의아한 마음에 그건 왜 묻냐고 묻자, 지갑을 잃어버려 같은 버스를 타면 카드를 찍어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다른 버스라고 하자 얼굴에는 당황하고 민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현금이 있던 난 잘 됐다 싶은 마음에 5천 원을 건네며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잠시 놀란 얼굴을 한 학생은 망설이며 계좌번호를 물었지만 "아니다, 괜찮다.(돈 버는 어른이다) 걱정 말고 어서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어린 학생에게 5천 원이란 돈을 계좌 번호까지 불러주며 돌려받긴 좀 민망하지 않은가.
그런데, 해맑게 도움을 받고 떠날 것 같던 그 학생이 눈시울이 붉히더니 고개를 숙여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거 아닌가.
지갑을 잃어버려 교통비가 없던 그 상황이 어린 그 친구에게는 많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아마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수십 번을 망설였을 것이다. 나 역시 놀란 마음에 괜히 더 사람 좋게 웃어주며 다독여 버스를 태워 보냈다.
이후 집에 가는 내내 꽤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은 내가 꽤 잘 자란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 학생에겐 난 위기의 순간 도움을 준 괜찮은 어른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아닌가.
날 어른이라고 느끼게 만든 건 1인당 10만 원이 넘는 고급 음식도, 해외 거장들의 유명한 그림도 아닌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쿨하게 건넨 5천 원이었다. 나잇값이라는 건 단돈 5천 원으로도 치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 좀 철 없이 살다가도, 이렇게 어른이 되어야 할 순간에는 놓치지 말고 꼭 어른이 되어야겠다.
작은 다짐을 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