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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

by 오드리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 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손원평/ 아몬드/p.136)


눈길만 돌려도 온통 꽃들이다. 목련도 껍질을 떨어뜨리고 하얗게 매달려 있고 벚꽃은 팝콘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화단 안으로 뛰어들었다.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안돼" 하고 소리를 쳤다. "싹들이 나오고 있어." 들어 올린 발아래에 붓꽃들이 솟아 나오다 움찔하고 있다. 올해는 꽃들을 보면서 이쁘다는 감탄에 앞서 나오느라 얼마나 수고했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애썼다!


이제 봄이라고 사람들이 꽃처럼 활짝 웃으며 반가워하지만 사실 봄은 2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입춘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천연색 꽃들이 피어나야 봄이 아니다. 봄은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기간이다. 언 땅이 녹고 땅밑에서 움을 틔우고 물을 끌어올려 꽃을 피워내는 보이지 않는 그 애씀이 봄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우리만 모를 뿐. 4월은 봄이 마지막 결실을 보여주며 떠나는 달이다. 그래서 5월에 초여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봄이 너무 짧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건 아니다. 봄은 이미 충분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그 봄을 지나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고, 어떤 아이들은 움을 틔우고 있고, 어떤 아이들은 꽃망울을 맺고 있다. 속도의 차이는 있을 뿐 모두 애쓰고 있다. 졸고 있어도, 자고 있어도, 핸드폰에 빠져 있어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도 모두 똑같이 애쓰고 있다. 각자의 봄의 길이가, 준비하는 속도가 다를 뿐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오늘도 W는 결석이다. 처음 입학하여 눈이 반짝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의욕에 차 있었고 뭐든 나서서 하고 싶어 했다. 여자 친구들과도 수다를 떠는 부드러운 결을 가진 아이였다. 그러다 후드티 모자를 쓰고 말없이 앉아 있다가,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기도 했다. 결석을 띄엄띄엄하더니 눈을 피하고 대답도 피했다. 그렇게 2년을 들락날락 버티다 올해 3학년이 되어 다시 만났다. 3월 첫 시간에 맨뒤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이후로 몇 번 조퇴한다며 복도에서 마주친 것이 전부다.


사정을 다 모르는 나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W 자신이라는 것을. 잘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다. 꽃 피우고 싶지 않은 꽃이 한송이도 없는 것처럼. 걱정의 양과 강도를 따진다 해도 W가 짊어진 걱정이 가장 많고 셀 것이다. 꽃샘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 혼자 피고 있는 꽃송이 자신이듯이. W가 지나가고 있는 그 봄도 인정해주고 싶다. 2월과 3월 땅속에서 땅 위에서 온몸으로 받아내고 이겨내었을, 우리가 모르는 봄의 몸짓을 인정해줘야 하듯이. 더 따뜻한 날이 와야 피는 꽃도 있다. 올해는 몰려나오는 꽃을 보며 그 마음이 가득하다. 내일은 W가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 도서관뒤 벚나무 아래로 불러내 꿍쳐둔 크런치 초콜릿이라도 손에 건네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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