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느 날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말인데 뜬금없이 오늘 아침에 생각이 났다. 말 잘하는 사람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나는 몇 번을 태어나도 도달하지 못할 지점이라 생각한다. 이 말을 한 아나운서는 자신이 말을 잘하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에 말에 '끼'를 부리기 시작한다고 고백했었다. 그건 말재주를 부린다는 의미 같은데 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경지까지 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든 주도적으로 나서서 말하고 상황에 맞게 청산유수로 쏟아내는데 또 재미있기도 한 사람들은 경이롭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가끔은 내용이 없는 경우들이 많다.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속은 없는 말을 들으면 그 당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그게 '끼'를 부려서 그런 건가...
반면 '잘 말하는 사람'이란 전달을 잘하는 사람으로 들린다. 유창하거나 사로잡는 기술은 없지만 말의 내용에 끌림과 울림이 있어 듣는 이들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게 하는 부류들이다. 어눌하고 소박하지만 진심이 전해지는 대화는 그 자체로 힐링이 되기도 한다. 상대와 공감할 줄 알고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지 않고 내용이 전달되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전해 볼 만하다 생각했는데 말 잘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보았다.
'글 잘 쓰는 사람보다 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그런데 이 문장은 껄끄럽다. '잘 글 쓰는 사람'은 외국인이 우리말 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글이란 활자로 되어 있고 이미 글 속에 전달하는 기술까지 다 포함되어 있어서 '잘 글 쓰는 사람'이란 표현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글 잘 쓰는 사람이면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읽는 사람이 단숨에 읽어 내려갈 동력을 제공하고 쉽게 이해되고 울림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겠다. 그런 글에도 '끼'가 들어갈 수 있을까. 있을 것 같다. 글재주를 부리는 글들이 있다. 그런 글도 읽으면 대책 없이 부럽다.
그렇다면 '잘 글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자꾸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통용될 수도 있겠지. 뭐. '잘 글 쓰는 사람'은, '잘 말하는 사람'처럼, 매끈하고 유려하지는 못해도, 혀를 내두르는 표현은 부족해도 진실한 마음이 드러나 있는 글, 거칠지만 소박한 표현에 울림이 있는 글이 아닐까.
사실, 한글을 처음 깨친 할머니들이 쓴 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 할머니 같은 분들이야말로 '잘 글 쓰는 사람'들이 아닐까. 막 우겨보고 싶다. 왜냐면, 말을 잘하는 사람도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닌 이상, '잘 말하는 사람'이나 '잘 글 쓰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은 게 사실이니까. 그래도 글 잘 쓰는 사람,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