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입학할 당시 B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남학생도 요즘은 머리를 자유롭게 기를 수 있어서 전교에 한두 명은 긴 머리를 하고 다닌다. B의 굵고 생기 있는 머리는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다. 목적은 단 하나. 머리를 잘 길러서 어머나 운동본부(어린이 암환자에게 머리카락 나눔)에 기부하게 만드는 것. 잘 길러서 가발을 만들자고 했더니 녀석은 씩 웃기만 하고 무심하게 뛰어다녔다. 찰랑찰랑..
3학년이 되어 나의 영어권 문화 수업에 녀석이 후광을 쓰고 떡하니 앉아 있었다. 여학생들보다 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반가웠다. 엎드려 있으면 다가가 한 번씩 쓰다듬어 본다(물론 허락을 맡고). 윤기가 촤르르 흐르는 건강한 머리카락이다. 언제 자를 거냐고 물으니 군대 갈 때 자를 거란다. 그렇지 군대 가려면 잘라야지. 어머나에 기부할 거지, 살짝 물어보니.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앞에서 보면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는 인디언 추장을 보는 것 같다. 저 정도 길이면 긴 머리 가발도 가능할 것 같다. 아, 흥분된다.
며칠 전 급식지도를 하고 있는데 B가 식사를 마치고 계단을 올라가는 게 보였다. 불러 세워서 뒷모습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왜 그러냐고 한다. 한 장 보관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수줍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그리곤 긴 머리를 연기처럼 날리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까만 종마가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