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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Apr 14. 2024

교무실에 들어갔더니 시험에 험한 것이 나왔다

ft. 영화 '파묘' 


지난주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중간고사 시험문제 출제로 긴장감이 돌면서 교사들은 정신없이 바빴답니다. 교무실 출입문에는 얼마 전 개봉된 영화 '파묘'를 패러디한 문구가 붙었지요. '교무실에 들어갔더니 시험에 험한 것이 나왔다'. 선생님들이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있을 수 있으므로 교무실에 불쑥 들어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문이랍니다. 



그걸 읽고 혹시나 그대로 하면 시험에 '험한 것'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기대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들어오던 안 들어오던 시험문제엔 반드시 '험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시험은 학습한 것을 제대로 습득을 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인데 굳이 '험한 것'으로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이 나라 교육이 지금 그렇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의 행복지수가 좀 산다는 나라들 중에서 최하위에 떨어져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걸요.


내가 교사를 그만두고 싶은 첫 번째 이유에 시험문제 출제가 들어가요. 누구도 풀지 못하게 문제를 내야 하니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답니다. 왜 그러냐구요?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지요. 문제가 너무 쉬우면 1등급이 나오지 않고 모두 2등급이 되어 버리면 그야말로 아이들이 대학 가는데 대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잘하는 아이들이 1등급이 아니라 2등급이 되어버리면 대학지원 시 엄청난 문제가 생길 수 있지요. 


강남에 있는 학교에 근무할 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영어실력이 TOEIC 만점을 받을 정도인 학생들도 있었거든요. 시험범위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벗어나면 안 되고, 선행학습을 조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어도 안된다는 기본 지침이 있어요. 거기에 전년도의 기출문제는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하고, 주변의 사교육 학원에서는 몇 년 치 기출문제를 책으로 만들어 풀이를 해줍니다. 요즘은 전근 온 선생님이 있으면 그분의 전학교 기출문제도 풀이해 주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어요. 


그래서 교사들이 머리를 짜내고 짜내어서 새로우면서 다 틀릴 수 있는 문제를 만드는거지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런 문제를 일명 '킬러문항'이라고 하는데 그걸 맞추면 1등급이 되는 거지요. 어떻게 그 문제를 맞히는지 경이롭기에 앞서 경악할 때도 있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찌감치 좌절과 포기를 맛보게 되는 거고요. 그래서 '험한 것'을 피해 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자'는 말은 상대평가의 무한경쟁 속에선 잔인한 주문일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0.1점 차이라도 줄을 서야 하기 때문이지요. 매년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혹시 '킬러문항'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시쳇말로 무서워서가 아니라 '안 풀고 만다'는 마음으로 떠나는 건 아닐까 찔릴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학교 교육의 목표는 아름답고 희망적입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공교육에 있는 교사들에게도 아무런 힘이 없어요. 학생들도 아무런 힘이 없어요. 누가 나서서 우리 이렇게 하지 맙시다, 아이들의 기운을 빼고 교사들의 진을 빼는 현실을 바꾸도록 합시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체도 없고 형체도 없는 유령 같은 믿음과 흉흉한 소문이 교육을 끌고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숨 쉬며 살 수 있는 것은 급식과 친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아이들이 숨 쉴 구석이 있어 참 다행이지요. 


"얘들아 미안하다. 노크 후 문을 살짝 열고 선생님을 불러도 험한 문제가 이번에도 나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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