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루었다. 아이들은 힘든 하루를 보내지만 교사들은 하루종일 시험 감독을 하면서 밀린 일을 한다. 빡세게 감독하지 않아도 되니 하루 쉰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오후가 되면 수업하는 것보다 더 피곤함을 느낀다.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저녁에 엄마들이 고기라도 구워 먹이면 좋으련만. 그건그렇고, 답안지에 보면 필적확인란이 있다. 주로 한국 시중에서 한 줄을 인용하는데 유명한 것도 있고 처음 보는 것도 있다. 이번에 사용된 한 줄은 보는 순간 우와 소리가 나왔다.
'징검다리 선들선들 밟고 오는 봄바람'
문제지를 나눠주면서 소리내어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감정을 살려. 아이들이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너무 완벽하지 않니. 징검다리를 밟고 온대 봄바람이. 바람이 징검다리를 밟고 온대. 멋지지 않니?"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첫 학력평가를 시작하며 각오에 차있던 아이들 눈에서 바람이 새 나갔다. 반달처럼.
하루종일 중얼거리며 다녔다.
'징검다리 설렁설렁 밟고 오는 봄바람, 아 좋다, 징검다리 설렁설렁 밟고 오는 봄바람'
조인성이 모시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저 멀리서 강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더 행복해져서 계속 소리내어 읊었다.
"샘, 설렁설렁이 아니라 선들선들인데요."
맨날 뚱하게 있던 T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날렸다.
아이들이 씩 웃었다. 이제 한국사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아이들 눈가로 또 바람이 새어나갔다.
그렇군. 선들선들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제대로 봄바람이 느껴진다. 시인은 정말 다르군. 그래도 조인성 봄바람도 괜찮은 것 같다.
찾아보니 곽재구시인의 '봄'이었다. 감독하다 이면지에 필사해 보았다. 선들선들 건너온 봄바람에 온갖 봄꽃들이 여기저기 터져나오고 있다. 4월, 저 꽃들 속 한 송이로 살짝 끼어 같이 피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