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온 고양이
학교가 이렇게나 쓸모있는 곳이었다니
지난주 어느 아침에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학교에 왔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 다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 아이들이 가만 두지 않는다. 특히 동물과 교감이 가능한 아이들이 있다. 녀석은 한 여학생의 품에 안겨서 교무실로 들어왔다. 다른 학생은 이미 sns로 주인까지 찾았다. '당근'에 주인이 고양이를 찾는다고 올린 글을 읽고 이미 서로 통화까지 했단다. 요즘 아이들의 소통법이다. 이름은 까미라고 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흔한 코쇼(코리안 숏헤어 줄임말)가 아니라 족보가 있는 페르시안 일 것 같다고 자칭 고양이 전문가들이 말했다. 학교에 그런 전문가들이 수두룩 하다. (맞는지 어떤지는 모름)
그런데 주인이 직장에 있어 저녁 7시에 퇴근이라 그 이후에 찾으러 온다고 했다. 학교라고 하니 믿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작년 가을에 학교에서 새끼를 낳은 '호랭이'라는 이쁜 어미 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자칭 호사모(호랭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선생님들로 가득한 교무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기말고사 출제기간이라 모두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다리를 비비며 걸어 다니고 책상 위로 뛰어오르고 야옹야옹 울어대면 어떻게 될까. 음. 짐작대로다. 모두 집사가 되어 눈이 하트로 변했다. 어디선가 밥그릇이 나오고 물그릇이 나오고 고양이 먹이가 나오고, 캔이 나오고, 호랭이 장난감도 들어왔다.
다른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도 목을 빼며 한 명씩 내려와 구경하고 갔다. 마치 딸이 맡기고 간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의 눈빛으로 작은 생명체 옆으로 모여들었다. 교무실 밖에서는 학생들이 문틈으로 구경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사람 손을 피하지 않고 쓰다듬고 안고 만져도 가만히 있었다. 힘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어젯밤에 학교 앞 연립주택에서 방충망을 뚫고 나왔다고 한다. 먹이를 주었더니 차분하게 다 먹었다. 기품이 있었다. 주인도 3일 전에 친구한테 받았다고 한다. 잘 보살핌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공식 캣맘인 선생님이 주인에게 전화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좀 더 잘 돌봐야 할 것 같다고 한 소리를 했다. 확실히 직업병이다.
까미는 교무실 옆방에 있는 소파에 똥도 싸고 오줌도 쌌다. 그리고 캔 하나를 다 먹고 책상 밑 구석에 들어가 한참을 잤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자는 모습을 한 번씩 들여다보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녁에 호사모 카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젊은 남자가 까미를 꼭 껴안고 있었다. 주인을 잘 찾아갔다. 학교는 이렇게 동네 고양이도 돌봐주는 참 쓸모 있는 곳이다. 녀석이 똑똑하게도 잘 찾아왔던 거다. 옆에 초등학교로 갔으면 쉽게 주인도 못 찾았을지 모른다. 고등학생쯤 되니 바로 sns를 뒤진 거다. 그리고 고양이한테 하트 눈빛을 날리는 한 무리의 지성인 아줌마들을 만났으니 운이 좋은 녀석이다. 이제 20살이라는 젊은 주인과 돌봄이 필요해 보이는 까미가 잘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