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서 수다떨고 싶다.'
'서점에 가서 책구경 하고 싶다.'
'고양이 카페에 가서 고양이 보고 싶다.'
10대가 끝나기 전에 친구들과 꼭 해보고 싶은 것을 써보라고 했더니 나온 문장중 몇가지다. 영어권문화 수업의 수행평가이고 영어로 작성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해외여행을 가겠다(특히 일본여행이 많았다), 운전면허를 따서 놀러 가겠다. 술을 마시겠다. 이성 친구를 사귀겠다, 바다에 가겠다. 집을 나와 친구들이랑 살아보겠다, 파자마 파티를 하겠다,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스카이 다이빙을 해보겠다,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겠다, 남극에 가보겠다, 같은 원대한 것들도 있었다. 그 나이 때 해보고 싶은 것들이고 수능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의 글을 읽다가 'play and enjoy'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글자 하나 하나가 새삼 특별하게 보였다. 세 단어가 종이 위에 누워서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10대가 가기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놀고 즐기기'라니. 얼마나 놀고 싶으면.
고 3의 굴레가 이리도 옥죄고 있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고 있구나. 혹시 누워서 친구랑 수다 떨다가, 혹시 친구랑 서점 갔다가, 혹시 고양이 카페가서 친구랑 놀다가 들키면, 그러다 원하는 대학에 못들어가면 원망을 들을지도 모르니까. 누가 아무말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인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 3이라도 여유를 좀 가지고 하면 좋을텐데. 하루정도는 머리도 식힐 겸 친구랑 수다도 떨고, 서점 나들이도 해보고, 고양이 카페도 가봐도 될텐데. 더 효율적일 수도 있을텐데. 놀고나면 마음이 더 무거워져서 그럴거다.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무게가 얼마나 큰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냥 버티고 앉아, 하고 싶은 것을 참고 견디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그렇게 인내하며 견디고 있는 것 같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이 불편한, 어서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을 1년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수행평가를 매기다 내가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