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펙터클한 모험을 좋아하고 즐기기도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상태는 평온과 평화다. 조용한 곳에서 맛있는 음료수를 홀짝이며 영화나 책을 보고 단상을 적는 순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외부 환경이 늘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다. 세상에는 각자가 주인공인 영화 78억 개가 동시 방영되고 있으니까. 나의 기쁨이 누군가에게 시기 질투를 유발하기도 하고 타인의 무심함이 나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 누구의 의도가 없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개개인의 우선순위가 다른 이유로 일어나는 비극이기도 하다.
나는 외부의 상황과 관계없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다. 때로는 세상과 만나 일렁이는 파도로 반응하고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도 재밌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는 깊은 바닷속 고요함처럼 묵직함으로 안정적이고 싶다. 그 안정감으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재밌는 사실은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들이 좋은 글감을 물어온다는 것이다. 괴롭고 슬픈 마음이 들면 그 감정을 따라 유영하는 생각들을 수집하고 그 생각 끝에 걸려있는 나의 진짜 마음들을 만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때로는 단순하고 때로는 복잡하다. 복잡한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며 확대해보면 그 안에서 의외의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메시지를 씨앗 삼아 글을 쓴다. 나의 눈물을 머금고 자란 글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다가가 살포시 위로가 되고 따스한 온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보통 마음이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의 외부 환경은 관계에 대한 문제일 때가 많다. 내 마음속도 깊은 바다처럼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타인의 마음은 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마음의 바닷속을 유영할 수 있지만 타인의 바다는 물 위에서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결론을 짓는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간단하다. 이 간단한 명제가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오래 걸릴 뿐이다.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극단적이고 특수한 경우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정신생활을 위한 전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한 다짐이다. 그리고 자기애 강한 유리멘탈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전제 1. 누구에게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각자의 상식은 다를 수 있다. 상대방이 나의 상식으로는 정말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한번 되새기자.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인정할 뿐. 상대방의 상식이 나와 달라서 지속적으로 힘들다면 각자의 길을 가는 것도 방법이다.
전제 2. 사람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과거가 마음에 들지 않고 후회가 된다면, 어리석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바라보자. 적어도 지금의 괴로운 감정은 내가 과거를 바라볼 때 더 나은 결정과 선택지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는 증거다. 상대방의 결정도 그에게는 최선일 수 있다. 그의 최선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자.
전제 3. 상대를 위한 진짜 선의의 제안은 수락과 거절의 선택지에 치우침이 없다. 상대방에게 수락의 강요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니다. 나를 위한 제안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돕고 싶은 선한 마음이 올라온다면 그것을 표현하되 상대방이 정말 원하는 결정을 기쁘게 수용한다. 그것이 수락이든 거절이든. 선의가 거절되었을 때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위한 제안이 아니다. '너를 위해'로 시작하는 말의 대부분은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이다.
전제 4. 진심이 '온전히' '동시에'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영원히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닿지 않을 수 있다. 상대방의 진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언어는 불완전하며 한계가 있다. 살아온 방식도 경험도 다르다. 나의 진심을 강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간에 대한 믿음은 놓지 않되 '진심'이라고 이름 지은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진심은 전혀 다른 마음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제 5. 누구나 상처는 있다. 그 상처가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할 거라고 생각하는 방패를 만든다. 우리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취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방패를 드는 순간이 있다. 그 방패가 이상한 전제와 맞물려있는 경우도 있다. 그 방패가 지금까지 나를 보호해왔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함부로 방패를 제거하려 하지 말자.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방패의 모양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제 6. 모두가 나의 희소식을 기뻐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나의 행운을 축하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타인의 마음을 조정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어디에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있다. 나도 그렇다. 왜 미워하냐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나의 몫, 타인의 감정은 그의 몫이다. 내가 무엇을 해서, 무엇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삶의 방식과 나아가는 방향이 다를 뿐.
전제 7. '인정과 수용'은 '합리화와 회피'와 다르다. 합리화와 회피는 일시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눈가림이다. 그렇게 응급 처치한 감정은 재발한다. 하지만 인정과 수용 후에는 행동한다. 지금, 여기의 나와 타인을 바라보고 감정을 흘러가도록 바라보고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나아간다. 나는 내 감정보다 더 크다. 나의 취약함을 인정해도 별 일이 생기지 않는다.
눈치챘겠지만 이 전제들은 내가 괴로운 순간들에 대한 고백이다. '도대체 왜?'에 대한 의문의 순간들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잘 된다면 관계로 인한 괴로움이 줄어들 텐데. 인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이라서 내가 느끼는 고통과 감정은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다. 그래서 이 전제들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로 쓰고 선언하듯이.
갑각류는 허물을 벗으며 성장한다. 성장 직전 허물을 벗는 순간이 가장 취약하다.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어쩌면 나는 지금 허물을 벗는 중인지 모른다. 갑각류는 단단한 껍질 속에 있는 칼슘 성분을 모두 혈액으로 빼내어 껍질을 물렁하고 투명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몸으로 세상에 나온다. 이왕에 내가 지금 껍질을 벗는 중이라면 그동안 나를 지켜준 때 묻고 착색된 껍질에게 감사를 전해야겠다. 어쩌면 온몸이 단단한 갑각류에게 허물을 벗는 이 시기는 부드러운 몸으로 세상을 만나는 얼마 안 되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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