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연필 세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_다니엘
난독증 대상 특별 상담 번호는 있어요. _관료
몇 번이오? 나는 컴퓨터 난독증인데. _다니엘
인터넷에 나와요. _관료
Q. 내가 생각하는 '인간 중심적인 시스템'은 무엇인가?
A.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볼 때마다 올라오는 공통적인 감정은 분노와 답답함이다. 분노 안에는 다양한 얼굴을 한 감정들이 섞여있다. 화, 슬픔, 애잔함, 놀람, 무력감 등이다. 현실에서 느꼈던 감정들과도 연결된다. 컴플레인 전화가 유독 연결이 늦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혹은 적용되고 있는 시스템이 '인간 중심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순진해빠진 생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리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거듭 생각해도 시스템은 인간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영화 <신세계>의 강형철 과정이나 고 국장과 무엇이 다르겠나?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과정을 용인한다면 그 목적은 계속 선한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신세계>를 운운하는 것은 과잉 반응이다. 하지만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보지 않고 대상으로 보는 순간 장르가 변한다. 우리 눈에 피 튀기는 장면이 없어도 냉혹한 시스템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없는 절규는 이미 핏빛이다. 아무도 다니엘을 죽인 사람은 없지만 영화 속 관료들이 다니엘의 죽음에 정말 무연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관료들(앤을 제외한)은 막스 베버가 말한 가치 합리성과 목적 합리성 중 목적 합리성에만 매우 충실하다. 기계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효율만을 생각하느라 정작 인간은 소외되는 이상한 현상이다.
합리성에는 가치 합리성과 목적 합리성이라는 것이 있다. 베버는 가치 합리성 없이 목적 합리성으로만 합리성이 굴러가는 걸 무척 경계했다. 조직이라는 것이 원래는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인데 점점 조직만 굴러가느라 인간이 내팽개쳐지는 상황, 이 상황이 바로 가치 합리성 없이 목적 합리성만 남은 대표적인 경우다. (중략) 인간의 가치, 삶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기술적 합리성과 계산적 효율성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은 인간에게는 불편하고, 때론 절망적이고, 결정적으로 무섭다.
출처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이진민
시스템이 굴러간다는 것은 그것을 용인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나치즘이나 파시즘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힘이 있었다. 힘으로 다른 나라, 민족을 식민지로 삼는 제국주의도 그것을 바라는 다수가 있었다. 전쟁은 지도자의 의지만으로는 진행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속내로 얽히고설킨 이기적인 마음이 그들을 지지한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면, 다니엘처럼 항의하고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다니엘을 보며 "당신이 영웅"이라며 손을 들고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의 말이 곧 민심이다. 손해 보고 희생되는 이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 마음은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도 좋다는,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자신이 소수가 될 리 없다는 자만이 깔려있다. 수많은 다니엘이 존재하는 한 그 시스템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시스템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뉴얼이 있어서 매 순간 공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동되는 형태의 조직은 실수가 적으며 각 결정에는 근거가 있다. 다양한 부서에서 각자 맡은 업무를 하는 이 방식은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서로가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의 결론은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시스템을 운영하자는 말이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목적 합리성뿐 아니라 가치 합리성을 잃지 않으려면 시스템의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점검하며 그 과정을 시스템에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가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목적 합리성/가치 합리성은 M. 베버(Max Weber)의 사회적 행위(목적 합리적ㆍ가치 합리적ㆍ감정적ㆍ전통적)와 관련된 합리성의 기준이다. 목적 합리성이란 목적ㆍ수단ㆍ예상되는 수반 결과 등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여 설정한 일정의 목적에 있어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수단을 지향하여 행동할 때의 기준이 되는 것. 가치 합리성이란 예상되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그 행위 자체가 갖는 윤리적ㆍ미적ㆍ종교적 등의 고유가치에 대해 의식적으로 지향하여 행동할 때의 기준이 되는 것. 목적 합리성에 있어서 서로 모순되는 목적 간의 선택은 가치 합리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고려한 후에 긴급성의 서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순수한 가치 합리적 행위는 목적 합리성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이 된다. 그러나 일관되게 명예나 종교적 신념 등을 지향하는 행위에도 고유한 합리성을 인정함으로써 복수의 합리성이 뒤얽힌 다양한 행위의 의미와 사회적 여러 관계의 사회학적인 분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목적 합리성/가치 합리성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편찬위원회)
2020. 8. 11 화 D-81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Q. 내가 생각하는 ‘인간 중심적인 시스템’은 무엇인가요?
A. 위의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늘 실소가 나온다. 인터넷에 나온다고 말하는 에너지로 직접 알려줄 수도 있을텐데... 메뉴얼, 원칙을 말하기 전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민원인 중 하나가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다를텐데... 매일 반복되는 기계적인 업무 속에서 ‘민원인’ 혹은 ‘리스트’ 정도로 인식하는 듯 하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 될 수는 있겠다. 시스템이 생기면 체계가 생기고 일의 순서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편리하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지를 잊지만 않는다면. 사용자가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면 대형병원만큼 편한 곳이 없다. 순서표 뽑아서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내 차례가 된다. 어디어디가서 어떤 검사를 하고 무엇을 하고 오면 된다. 단,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시무시한 외계같을 수 있다. 나도 대형병원에서의 불쾌한 기억이 있다. 내가 사람이 아닌 차트 속 ‘환자’로만 대해지는 기분. 시스템이 제공자와 사용자 중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모두를 위하면 가장 좋겠지. 제공자도 사용자도 사람이니까. 단순히 빠른처리를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시스템에도 온기가 있을 수는 없을까? 사람냄새가 나는 시스템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원칙에 예외를 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원칙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최대한 공의가 지켜지도록 하는데 필요한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시스템 안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좋겠다. 시스템은 하나의 추상개념이고 그 안에도 역시 사람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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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하루 10분, 질문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지금은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시즌 6 글쓰기 중입니다.
중간에 합류할 수 있어요. 함께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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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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