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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May 21. 2023

습지와 늪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습지와 늪 :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영화에서 건져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9기



사람들은 사실 습지를 잘 모른다. ​습지는 물이 흐르다 흐름이 멈춰서 오랫동안 고이는 과정을 통하여 생성된 지역이다. 완벽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갖추고 있다. 탄생과 죽음이 끝없이 순환한다. 다양한 생명체를 키우는 완벽한 하나의 생태계이다. 동식물을 포함한 많은 생명체에게 서식처를 제공하며 습지의 생명체들은 이 습지 생태계가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습지는 지구의 수많은 화학, 물리 및 유전인자의 원천이다. 그리고 에너지 저장소이자 변화의 산실로서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습지는 자연현상 및 인간의 활동으로 발생된 오염물질을 포함한 유·무기질 물질을 변화시킨다. 습지 생태계 안에서 에너지가 흐르며 화학적 순환을 시키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수질을 정화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습지는 "자연의 콩팥"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습지는 큰 비가 올 때 물을 담고 습지의 식물들이 물의 흐름을 지연시켜서 홍수를 방지하고 해안이 침식되는 것을 막는다. 지하수를 충전하여 지하수량을 조절하고 다양한 식물과 동굴 군이 살아가도록 한다. 습지는 아름답고 특이하며 특별한 경관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중요하고도 다양한 효과를 품고 있음에도 습지의 가치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습지는 버려진 땅처럼 취급되어왔다. 습지가 가진 이로운 점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도 최근에 습지가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생태적 기능과 보전적 가치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도 그렇다. 보이지 않아서 실체가 없어 보이지만 마음은 우리 몸의 에너지 저장소이고 변화의 산실이다. 그리고 우리 몸과 마음 안팎에서 생성되는 오염물질들을 정화한다. 긍정의 에너지를 저장하고 시끄러운 마음을 저변으로 흘려보낸다. 몸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은 마음의 역할의 중요성이 알려지고 있고 마음산책, 명상 등의 이름으로 마음을 돌보는 활동이 장려된다.


그렇다면 늪은? 내 마음속에도 곳곳에 늪이 있다면? 죽음을 통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죽음이라는 것도 크기의 문제일 것이다. 큰 생명체가 죽음을 통해 작은 생명체로 에너지가 이동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아마도 우리 마음에 늪이 있다면 그것은 무의식의 영역일 것이다. 나의 무의식 안에는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둡고도 두렵게 느껴지는 일들이 존재할 것이다.


큰 개체의 시선으로는 죽음일 테지만 아주 미세하고도 세심한 시선이라면 아픔, 슬픔, 분노, 증오, 혐오 같은 죽음과도 같은 큰 감정 덩어리들이 마음속 늪지대에서 고마운 미생물들에 의해 잘게 잘게 조각나 내가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태계 차원의 눈으로 볼 때 죽음은 비극이 아니다. 에너지의 순환일 뿐.

내 정신의 생존을 위해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잣대로 판단 내리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게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순환이 되고 있다면, 습지 속 늪은 제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내 마음속에 죽음처럼 느껴지는 감정 덩어리들이 있다면 밀봉하여 냉동하는 게 아니라 잠시 늪지대에 보내보자. 그동안 살면서 걸어온 흔적들이 미생물이 되어 늪지대의 죽음을 잘게 분해해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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