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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Nov 19. 2024

꽈리고추 조림이 뭐라고

우족탕을 시켰어야 했을까?

우리는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한 끼를 기대하며 집을 나선다. 편안한 분위기, 맛있는 음식, 그리고 정성 어린 서비스가 어우러진다면 그 시간은 그저 식사가 아니라 작은 축제가 된다. 하지만 간혹 예상치 못한 일이 그런 기대를 무너뜨릴 때도 있다.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음 한편에 쓴 맛을 남기는 순간들 말이다.


어제, 남편과 함께 찾은 경복궁역 근처의 한 식당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우리가 먹은 메뉴는 곰탕(18,000원)과 도가니탕(25,000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주문한 음식과 함께 몇 가지 정갈한 밑반찬들이 나왔다. 나물 위주의 밑반찬은 집에서는 잘해 먹지 않는 종류라 더욱 반가웠다. 그중 꽈리고추 조림이 특히 맛있었다. 단짠단짠을 좋아하는 나는 꽈리고추 조림을 남김없이 다 먹고 무김치와 꽈리고추 조림 리필을 요청했다. 직원은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반찬이 오지 않아 다시 한번 부탁드렸다. 그제야 깜빡했다며 무김치를 가져왔는데, 그때 직원의 말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꽈리고추 조림은 원래 우족탕(40,000원)을 주문해야 나오는 건데요. 이번에만 특별히 드렸던 겁니다. 다른 반찬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안 돼요. 음식이 남으면 안 되니까요.”


사과는 없었다. 대신 생색과 훈계가 섞인 말투가 돌아왔다. 마치 내 요청이 엄청 불합리한 특권이라도 요구한 것처럼 느껴졌다. 꽈리고추 조림에 금가루를 뿌렸나? 음식이 더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과 한마디를 바랐을 뿐이다. 깜빡했다고. 늦어서 죄송하다고. 직원의 깜빡한 실수는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손님을 오히려 가르치려 드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 순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불쾌하게 느껴질까? 곰곰이 되짚어보니,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서 "존중받고 싶다"는 감정이 상처받은 것이다. 고객으로서의 나를,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직원이 가볍게 여긴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란 돈을 받고 물건이나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자 관계다. 작은 실수를 만회하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다. 그저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작은 공감이면 충분하다. 사소한 일이지만, 때로는 이런 작은 말들이 큰 차이를 만든다. "죄송합니다.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죠."이 짧은 말 한마디가 오히려 고객의 마음을 풀어주고, 식사를 더 즐겁게 만들 수도 있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한 번의 외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상에서도, 관계에서도 우리는 종종 이런 순간들을 맞이한다. 실수를 했을 때, 상대방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관계의 깊이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늘 사과와 공감이다.


어제의 꽈리고추 조림은 내게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작은 사과가 큰 갈등을 막는다." 그것은 외식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관계에서 유효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미처 하지 못한 사과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상대방의 하루를 더 빛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큰 갈등으로 번질 수 있었던 불씨를 잠재우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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