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 자바체프를 통해 살펴본 ‘축제의 감정’

예술은 소유할 수 없고 영원하지 않다

by 윤지원
포장된 퐁네프 다리

예술작품 속에는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작품 속에 개입시키면서 그 과정에서 축제의 감정을 느낀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그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느낀다. 새가 지저귀는 것을 듣고 우리는 우리의 기분에 따라 '노래한다' 혹은 '슬피 운다' 등의 감정을 이입시켜 표현한다. 우리가 보는 입장에서 예술작품을 평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축제의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예술작품'을 매우 어려운 '시'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찾아서 작품을 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돼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소장 가치가 억대인, 골동품 같은, 소유하는 물건으로서의 미술을 벗어나, 보물창고와 같은 미술관 진열장을 탈출한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의 그것이다.



포장된 나무들

땅을 도화지 삼아 그의 감정을 화폭에 담듯이 표현해 냈다. 땅은 만물이 태어난 곳이고 우리가 항상 발 딛는 곳이며 생활하는 곳이다. 땅을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인간으로서 어쩌면 땅은 우리가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화지 인지도 모른다. 그가 땅을 도화지 삼아 표현한 작품 하나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작품보다도 거대하기 때문일 것이며, 지금까지 보아왔던 작품과는 달리 정말 작품이라고 불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국회의사당의 포장

수백만 달러가 넘는 그의 작품들이 설치된 후 불과 3, 4주 동안만 전시하고 해체되는 것에 대하여 경제학자들은 “그토록 많은 재원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은 스태프로 참여했던 한 여성의 말인 "이 프로젝트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준다"가 적절할 것 같다. 완전히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의 그 거대함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며, 아름다움을 몸의 감각 전체로 체험한다. 축제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주제를 내포하는지를 떠나서 그 존재만으로 이미 '축제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장 클로드와 크리스토 자바체프

크리스토의 '포장작업'은 음식과 닮은 점이 많다. 음식을 먹을 때 가장 먼저 코로 냄새 맡고, 눈으로 느끼고, 촉각으로 음미하고, 맛으로 느낀다. 음식을 만든 요리사가 어떤 의도, 어떤 고매한 정신으로 만들었느냐를 떠나, 먹는 이는 눈앞의 음식 자체로 평가한다. 신선함을 유지해서 빠른 시간 내 먹어야 하는 음식도 요리사는 갖은 세공을 하고 정성을 다한다. '포장'은 한시적인 것이고 일회성이 있다 하여도 그 본질을 더욱 값진 것으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요소이기도하다.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여 그것이 해소됨과 동시에 '축제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지금까지의 많은 예술 작품들은 형식이라 불리는 틀이 있어서 작가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붓기에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프락시 텔렉스는 "사물이 아름다우려면 엄격한 비례 속에
약간의 빗나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1, p.76 )


포장된 나무들

크리스토의 작품 연출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와 형식과 규모의 '빗나감'이라는 요소를 가미해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우리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며 느끼는 그러한 감정을 '축제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축제의 감정'은 예술 작품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월드컵에서의 전염성 있는 그 응원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천일야화의 셰헤라자드와 샤리아르 왕의 긴장감 넘치는 밤의 시간에도 분명 서로 다른 '축제의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만 ‘축제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슬픔, 두려움, 공포 등의 감정도 어떤 면에서 '축제의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슬픔이 가득한 문학 작품을 읽으며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고 읽어 내려가는 독자도, 언제 유령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공포영화를 끝까지 숨죽여 보는 관객도 ‘축제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잔잔한 일상을 일렁이게 만드는 자극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고 싶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


우산 프로젝트

우리는 매 순간을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축제의 감정'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완벽한 균형 잡힘 속에서 약간의 빗나감을 기대하며. 그래서 인생은 '죽어가는 과정'이 아닌 '살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소유할 수 없고 영원하지 않은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과거에는 없었고 미래에는 사라질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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