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소중한 조미료가 된 추위는 무엇인가?
7.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추우면 힘들긴 하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어.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다.”
_ 이치코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
Q. 내 삶에서 소중한 조미료가 된 추위는 무엇인가?
A.
친해진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종종 예전의 이미지, 첫인상을 주고받는다. 나의 첫인상은 (지금은 조금 날카롭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순둥순둥, 웃는상에 대한 것이다. 교회 고등부 교사였을 때 고등부에서 내가 실패담을 얘기한 후, "선생님은 고생 하나도 안 하고 좋은 환경에서만 살았을 것 같았는데, 오해해서 죄송했습니다."라며 한 남학생이 사과한 적도 있다. 대체로 그렇다. 순둥순둥 한 첫인상 덕분에 선을 넘고 실수하는 사람도 간혹 있으나, 사실 유무와 별개로 나의 얼굴에 고생의 흔적이 없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미술치료기법 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기 이해를 돕는 인생곡선 활동이 있다. 나이를 가로축으로 놓고 세로축은 좋고 나쁨의 정도를 플러스 마이너스로 표시한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내 인생곡선을 그리면 마이너스 쪽으로 움푹 들어가는 곳이 있다. 사업을 하다가 망한 시기다. 내 인생의 빙하기. 살면서 그렇게 처절하게 실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연이율 49%의 제2금융권에도 손을 내밀었던 그 시기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그 지경까지 왔으면 회생이 힘든 건데 나는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고 싶었다. 메뚜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무너지는 댐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막지 못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의 모습을 그래프나 굽은 선으로 표현하게 하는 미술치료기법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가 추락하고 나서 느낀 기분 저리 가라다. 내 입장에서 매우 주관적으로 보면 말이다. 방영이 끝나고 한참 후에 보면서 주인공의 심정이 당시의 나와 많이 비슷해서 놀랐었다. 주위에 늘 붐비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매일 저녁 두세 개씩 잡히던 약속도 신기루처럼 돈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그 와중에 좋은 점하나는, '천송이'의 대사처럼 누가 내 사람인지 아닌지 알게 된 것. 내가 느꼈던 그 기분이었다. 알곡으로 착각했던 내 인생의 쭉정이는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 시기를 겪으며 나의 뾰족한 부분과 내적 성장을 방해하던 암덩어리 같은 것들이 제법 많이 깎여나갔다.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만,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교만, "나 윤지원이야!"라는 오만,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던 심각한 편견.
매우 힘들었던 그 시기를 겪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빛나는 지혜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 칠흑처럼 어둡던 추위 속에서 나는 기도를 회복했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다. 무엇보다 겸손해졌다.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 인생 곡선의 실선은 저 멀리 마이너스 쪽 아래를 향하지만 점선은 위를 향하고 있다. 가족들에게 갚아야 할 빚을 평생 지울 수 없겠지만 내 눈을 덮고 있던 껍질들이 벗겨지면서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매서운 추위였지만 내 삶이 썩지 않도록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순간이었다. 겪지 않고도 알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어리석고 어렸다.
내 삶은 추위 덕분에 조금 더 풍성하고 깊어졌다. 메멘토 모리와 함께 그 추위를 늘 기억한다. 내 인생에 추운 조미료는 충분하니 이제는 따뜻한 조미료를 원한다. 내 인생이 어떤 맛을 내는 요리가 될지 기대된다.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100일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루 10분 짧은 시간에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반 정도 여정을 지나왔고 이제 반 남았습니다. 합류를 원하는 분을 위해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blog.naver.com/dove7522/22203545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