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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Sep 13. 2020

부모님을 한 ‘존재’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있나?

6.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나는 엄마에게 있어 진정한 가족이었을까?”


_ 이치코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


Q. 부모님을 나의 어머니/아버지라는 역할이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존재’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있나?


A.

명절이었나, 몇 년 전 시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어머님이 "나도 엄마 보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여러 말이 오가는 중의 한 문장이었는데, 내 마음에 콕 내려앉았다. 내 눈에 한참 어른이셔도 엄마가 보고 싶은 딸이다.


작년 이맘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환갑이 훌쩍 넘은 엄마가 그렇게 슬픔에 몸부림치며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관이 차에 실릴 때, 땅 속에 관을 내릴 때, 땅을 덮을 때, 엄마는 슬픔으로 온몸이 녹아내릴 듯이 고통스러워했다. "엄마! 엄마! 가지 마!" 관을 붙잡고 주저앉아 우는 엄마는 60대 여인이 아니라 방금 엄마를 여읜,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 아이였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부모님의 존재는 희미해지지 않는다. 가슴에 묻고 살아갈 뿐. 80대 노신사도 어느 가슴 무너지는 날에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의 사진을 안고 운다. 


엄마 아빠의 사진 속 젊은 시절, 부모님의 20대 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지면서 두 분이 처음부터 나의 엄마와 아빠로 태어난 게 아니라 자유분방하고 젊음으로 빛나는 한 ‘존재’라고 깨달았다. 사진 속, 화장도 거의 하지 않은 엄마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자신 있고 당당한 기세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젊은이다. 사진 속 아빠는 눈매가 살아있는,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빛나는 청년이다. 말갛게 바다 위로 방금 떠오른 아침의 해 같다.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던 엄마, 아빠는 어린 생명을 낳아 부모로 살게 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삶이 너무 많이 무겁지는 않으셨을까.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부모님의 몸은 나이 들어 변하고 계시지만 그 안에 담긴 영혼은 지금도 청년 그대로라고 나는 믿는다. 어쩌면 두꺼운 옷을 입고 있던 영혼이 지금은 옷을 벗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더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부모님을 보면서 느낀다. 젊은 날에는 살아내느라 꽁꽁 싸매고 있어야 했던 영혼이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반갑다.


내 나이 올해 마흔이다. 오래전에 내 눈에 비쳤던 마흔의 어른들과 지금의 나는 전혀 비슷한 느낌이 아니다. 서른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에 서른은 무엇이든 잘하고 지혜롭고 힘 있는, 그런 완전한 어른이었다. 나에게 마흔은 말 그대로 불혹,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상태의 어른. 하지만 내가 도착해서 보니 사람으로 살며 그런 시기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 나는 여전히 넘어지고 고민하고 좌절하는, 약한 인간일 뿐이다. 어른은 어쩌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타인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추측하고 측은지심을 갖는 것이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인지도.


부모님을 나와 같은 한 '존재'로 보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가수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라이브 노래를 들으면서였던 것 같다. 내게 온 힘을 다해 거름이 되어 주셨는데도 나를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것 같은 죄스러움에 한참을 새벽에 울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B5nyPlqLoc

가족사진(가사) - 김진호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 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에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 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100일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루 10분 짧은 시간에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반 정도 여정을 지나왔고 이제 반 남았습니다. 합류를 원하는 분을 위해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blog.naver.com/dove7522/2220354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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