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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Sep 12. 2020

나중에 깨닫게 된 부모님의 사랑 표현은 무엇인가?

5.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 제발 정성이 들어간 음식 좀 먹자’며 투정했었는데,

엄마의 푸성귀 볶음...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어...

_ 이치코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푸성귀 볶음을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해도

엄마가 했던 그 부드러운 식감을 살릴 수가 없는 이치코.

드디어 엄마의 푸성귀 볶음 비법을 깨닫습니다.

엄마는 채소의 겉 줄기를 하나하나 벗기고 나서 볶았다는 것을.


Q. 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깨닫게 된 부모님의 사랑 표현은 무엇인가?




A.

나는 순둥순둥 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차갑고 칼 같은 면이 있다. 특히 사적인 영역에서.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고마우면 고맙다,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코칭, 강의할 때는 온 감각을 동원해서 고객의 비언어적 표현에도 집중하는 걸 보면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는 내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그래 놓고 진심은 통한다고 가슴 깊은 곳에서 믿고 있는 것은, 표현하지는 않고 내 진심은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엄마한테 신경질을 내거나 서운한 말을 하고 나서 사과를 하면 엄마는 언어로 반응하지 않았고 나는 늘 답답했었다. 아직 화가 안 풀렸다거나, 사과를 받아주겠다거나 하는 답을 안 해 주셔서 나는 엄마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엄마와 신경전이 있고 나면 별다른 말이나 표현 없이 며칠 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또는 밑반찬 같은 것을 챙겨 주셨다. 아빠를 통해 문 앞에 놓고 가신다. 반찬이 남아 있어서 필요하지 않은데 엄마가 반찬을 보내면 나는 그냥 '뚱'할 뿐이었다. 그것이 엄마의 손 내미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것도 열다섯 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이 엄마는 그렇다고 알려줘서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늘 먼저 손 내밀고 계셨다. 내가 잘못했을 때 조차도.


그리고 엄마는 끼니때마다 따끈따끈한 새 밥을 지어 주셨다. 지금까지 늘. 독립 후 내 밥을 스스로 해 먹으며 깨달았다. 새 밥을 하면 남은 밥도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부모님과 살 때, 나는 한 번도 남은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찬 밥의 행방이 가슴을 찌른다.


아빠는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시다. 지금까지 아빠가 약속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을지언정 약속한 것은 무조건 다 지키셨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어쭙잖은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셨다. 아빠의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약수터에 간 날, 아빠가 물 뜨러 가시며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 오토바이에 올라타려다가 달궈진 마후라머플러에 종아리 뒤를 데어 화상을 입었다. 그 날 이후로 아빠의 오토바이를 볼 수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낚시를 다시셨다. 파란색 커다란 낚시가방이 늘 거실 한 편에 있었다. 아빠의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라고 지금에서야 추측한다. 그 가방이 한 곳에 계속 있다가 창고로 들어가서 그 이후로 한 번도 거실에서 본 적이 없다. 버리지 않으셨다. 지금도 그 가방이 본가 베란다에 있으니까. 아빠는 낚시를 가지 않기로 한 후 무엇으로 즐거우셨을까.


'제발 정성이 들어간 음식 좀 먹자'라고 쉽게 말하는 이치코의 뒤에서 이치코의 엄마는 푸성귀의 겉껍질을 벗기고 있다. 내가 눈치챈 이 몇 가지들 말고도 얼마나 많은 부모님의 사랑이 '일상'이라는 투명망토를 쓰고 내 삶에 공기처럼 스며있을까. 부모님의 사랑을 거둬내면 내 삶에 무엇이 남아있으려나. 아마도 진공팩 같아지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지금, 아직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고맙다는 말도 용서해달라는 말도 유통기한이 있는 법이다. 그 기회는 한 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살아계시다는 것 만으로 그것은 축복이다.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100일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루 10분 짧은 시간에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반 정도 여정을 지나왔고 이제 반 남았습니다. 합류를 원하는 분을 위해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blog.naver.com/dove7522/2220354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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