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단명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점잖은 평화주의자. 그래서 별명은 간디. 틈날 때마다 독서 혹은 오원장과 바둑 두기. 살육의 트라우마로 영혼 깊이 그어진 상처가 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가길 거부하는 자.
"눈이 반짝반짝 이쁜 애들.
차마 못 보겠더라고.
그래서 눈을 감아 버렸어.
그리고는 그 죄 없는 목숨들을 다 잡아먹고
나는 왜 여태 살아 있나 몰라."
_간필옹 할아버지
"위에서 시키니까 그랬지. 시키니까."
_정태
"시키는 대로 다 하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 아니다, 정태야.
사람 아니야."
_간필옹 할아버지
위 링크를 먼저 읽고 나서 아래 글을 읽으면 더 좋을지도...
간필옹 할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었다. 괜찮은 (정신) 병원의 최장기 환자인 간필옹 할아버지의 나이는 80세 전후로 보인다. 박정희 정부는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국군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다. 아무리 많아야 20대다. 어쩌면 십 대 후반 혹은 이십 대 초반일 수도 있다.(찾아보니 드라마에서 스무 살에 파병을 다녀온 것으로 나온다.) 위에서 시켜서 명령대로 행했을 지라도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죄가 아닌 게 되지 않는다. 한 인물이 떠오른다.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유대인을 유럽 각지에서 폴란드 수용소에 열차로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던 나치당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전쟁이 끝나갈 무렵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담당자가 된다. 그 해결책이라는 것은 수용소에 남아 있는 유대인을 모두 죽이는 것. 유대인 대량학살의 집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이 끝나고 도망쳐서 15년간 떠돌다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인근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체포된다. 예루살렘으로 이송된 그는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1962년 6월 교수형에 처해진다.
재판은 8개월간 지속되었는데 이유는 아이히만이 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죄가 없고 단지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것. 누구를 죽이라고 명령한 적도 없고 그런 권한도 없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만약에 제가 월급을 받으면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그때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_아돌프 아이히만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그 일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일이었다. 정확하게는 유대인 학살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유대인 수송 열차에 가스실을 설치하고 감독하는 것. 그러면 이동 중에 유대인들이 모두 죽어서 도착하기 때문에 시체만 처리하면 되기에 일처리가 훨씬 빨라지게 된다. 자신은 월급 받은 값을 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대답을 들으면 이 사람이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판을 지켜본 6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가 미치지 않았고 정상이며 준법정신이 투철한 인간이라고 판정한다. 8개월간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_한나 아렌트
그러므로 간필옹 할아버지의 죄책감은 옳다. 그는 유죄다.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이고 군인인 이상 시키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군법에 의해 처벌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명령을 듣지 않아 처벌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무용담 삼아 자신이 얼마나 용맹한 가에 대해 떠든다. 베트남 사람의 가죽을 벗겨 나무에 걸어놓았다는 그런. 누군가는 간필옹 할아버지처럼 타인을 향했던 총구 앞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이들은 타인을 향했던 총구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간필옹 할아버지와 문상태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공사장을 지나간다. 공사장의 굴착기 드릴 소리가 기관총 소리로 들리며 주위는 베트남전의 환영으로 바뀐다. 2020년의 한국이지만 그에게는 1960년대의 베트남이다. 과거의 늪에서 나올 수가 없다. 자신이 죽인 민간인 아이들의 눈동자가 그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고 생각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그리고 행동의 무능의 집합체였던 이들은 베트남전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광주에서 자국민 학살을 똑같이 자행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위에서 시켰기 때문에 그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을 것이다. 가스실이 아닌, 눈 앞에서 내 나라 동족 민간인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고 군홧발로 밟으면서도 자신은 죄가 없다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되뇌었을까? 충직한 군인이라고 뿌듯해했을까?
5.18 이후 또 다른 간필옹 할아버지들이 생겨났겠지. 지금도 어디선가 숨죽여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만나는 이들 중 어떤 이는 그들의 후손일 것이다. 자신의 손에 묻은 그 피와 같은 피가 흐르는.
괴물이 된 국가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는 많은 악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두 명의 악마와 수많은 평범한 복종자들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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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공포영화 속의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의 손발로 만드는 진짜 괴물 또는 시스템입니다.
_<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지음>
그러니 늘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그리고 이 일의 결과를. 수많은 평범한 복종자가 되어 악마의 수족이 되지 않도록.
http://program.tving.com/tvn/tvnpsy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