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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과거의 방

시키는 대로 다 하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 아니다, 정태야

by 윤지원

"눈이 반짝반짝 이쁜 애들.

차마 못 보겠더라고.

그래서 눈을 감아 버렸어.

그리고는 그 죄 없는 목숨들을 다 잡아먹고

나는 왜 여태 살아 있나 몰라."

_간필옹 할아버지


"위에서 시키니까 그랬지. 시키니까."

_정태


"시키는 대로 다 하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 아니다, 정태야.

사람 아니야."

_간필옹 할아버지




간필옹 할아버지는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괜찮은 정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는 장기환자다.


그는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 평화주의자이며 심지어 병원에서의 별명이 간디다.


그는 스무 살 때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민간인 학살의 현장에 있었다.

순진하게 바라보는 크고 까만 눈동자의 아이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전쟁에서 무고한 생명이 죽는 것을 보고,

현장에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평생을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괜찮은 정신 병원에서 살고 있다.

과거에 갇혀 이제는 현재로 나오는 문을 찾을 수가 없다.


과거의 방에 들어가더라도 나오는 문을 잘 기억하고 찾아서 나오면 괜찮다.

문제는 나오는 문을 잃어버리거나 현재로 나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힘든 경우도 있다.

밖으로 나와도 괜찮다고 안전하다고 믿음을 주는 단 한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간필옹 할아버지에게 그 손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오지왕 원장과 문상태일 것이다.

어쩌면 문상태의 손이 더 와 닿았을지도 모른다.


간필옹 할아버지의 사연이 마음 아프면서도 아쉽다.

그 아이들은 이미 죽어 직접 사과할 수는 없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전하고

사죄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면승부다.

사실은 가해자로서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이기는 하다.


어쩌면 간필옹 할아버지는 평생을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방식으로

그 영혼들을 향한 사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해의 방식으로 글로 쓰거나 영상편지 등의 방법은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과거는 무엇인가?


다행히 나는 과거의 방에 갇혀 있지는 않다.

가끔씩 들락거리기는 하지만.


나의 발목을 가끔씩 붙잡는 과거는 따돌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그 기억으로 현재의 내가 때때로 넘어지기도 한다.

거부당했던 기억은 그 자체로 괴롭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은 더 아프다.

'왜 그랬을까, 이래서였을까, 저래서였을까'

생각하다 보면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점점 더 어두운 방 속의 굴로 향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그들의 잘못이다.

누군가가 싫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따돌리는 것은 폭력이다.

잘못된 방법이다.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불빛은 성적이었다.

당시 내 생각에 체구도 작고 마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6학년 때의 생활기록부를 보니 29kg이더라.)

성적 우등생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생각해 보면 단지 혼자였을 뿐 요즘처럼 악질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까.

점심 도시락을 혼자 먹는 것이 참 괴로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괴롭지 않았어도 되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가 어때서.


사건에는 주도하는 무리와 방임하는 무리가 있다.

주도하는 무리든 방임하는 무리든 둘 다 나쁘다.

인식을 하든 안 하든 방임하는 것으로 주도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성인이 된 나는 그때의 어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똑같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은 것, 참 잘했다고.


성인이 되어 여러 마음공부를 하고 보니

주도했던 그 아이의 두려운 마음이 보였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이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희생양을 열심히 찾았을 터다.


내가 그 아이의 타깃이 된 이유를 짐작한다.

전학 온 직후 방과 후에 혼자 있는 그 아이에게 내가 손을 먼저 내밀었었다.

친절을 그런 식으로 돌려받을 것이라고 당시의 나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인간인 이상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이 재미있을 리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는 자신의 영혼을 할퀴고 있다.


누군가가 미워지면 그 순간에 나의 영혼을 걱정해야 한다.

양면의 가시로 상대방과 나를 동시에 찌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현대인은 어두운 과거의 방을 하나씩 혹은 그 이상,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방에서 나오는 방법, 열쇠를 잃어버리지 말고 꼭 간직해야겠다.

가능하다면 복사본을 하나 만들어서 믿을 수 있는 이에게 건네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http://program.tving.com/tvn/tvnpsycho

사이코지만 괜찮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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