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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Dec 08. 2020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름의 진짜 의미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19

| 이름의 진짜 의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히이라기 루미(치히로/센 목소리), 이리노 미유(하쿠 목소리)

개봉 : 2002. 06. 28 / 2015. 02. 05  재개봉


 치히로는 친한 친구들과 헤어져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태어나 처음 받은 꽃다발이 전학 때문이라니... 차 뒷자리에 누워서 부은 눈으로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꽃다발을 번갈아 보아도 속상한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이사한 곳에 거의 다 와가는 듯한데 길을 잘못 들어 치히로 가족이 탄 차가 산 길로 접어든다. 거친 길을 달려 멈춘 곳은 이상한 표정으로 웃는 석상 앞이다. 석상 뒤로 어두운 터널 입구가 있다. 바람 소리와 함께 낙엽이 입구 쪽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마치 터널이 바람을 빨아들이는 듯이. 무엇에 홀린 듯이 엄마와 아빠는 이상한 소리가 나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고 치히로는 혼자 있기가 무서워 부모님을 따라 들어간다.



 터널이 끝나자 차원을 이동한 듯 다른 분위기의 장소가 펼쳐진다. 오래된 기차역 대기실 같은 공간,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해 들어온 햇빛이 나른하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원을 4등분 한 문양인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차원 이동 문' 손잡이처럼 생겼다. 마치 이곳을 나가면 인간세상과 다른 차원이 나온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들어오는 길은 분명 하나였는데 치히로가 뒤를 돌아보니 터널 왼쪽과 오른쪽에도 같은 길이 나있다. 세 개의 길. 신화 속 영웅의 모험이 펼쳐지는 듯하다.



 문 밖으로 나서자 맑은 하늘 아래 잔디가 깔려있고 시냇물이 흐른다. 곳곳에는 낡은 건물이 있다. 아빠는 이곳이 90년대 때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거품경제 때문에 망한 테마파크라고 했다. 치히로는 이곳에서 계속 이질감이 느껴져 돌아가고 싶은데 부모님은 소풍이라도 나온 듯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음식 냄새를 따라 걸어가자 길가에 식당이 펼쳐진다. 치히로의 부모님이 그중 한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주인이 없는 식당에서 허락도 없이 음식을 먹는 부모님이 치히로는 영 못마땅하다.



 치히로가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돌아와 보니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해있다. 수많은 식당 중 이 곳만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음식이 내어져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덫인지도 모르겠다. 식욕으로 표현된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겨냥한 덫. 당황한 치히로 앞에 소년 하쿠가 나타나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는 치히로에게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준다. 온천장의 주인인 마녀 유바바에게 일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꼭 계약을 하라는 것. 그러나 곧 하쿠도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데... 치히로는 하쿠를 살리고 엄마 아빠를 구해서 다시 인간 세상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관객은 보통 주인공의 시선으로 감정선을 따라간다. 하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나 집중하고 있는 이슈, 역할에 따라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에게 공감하고 감정 이입하는 경우도 있다.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여러 등장인물이 나온다. 어떤 장면에서 누구의 감정을 따라 어떻게 이동하는지 탐색해 보면 현재의 나를 알 수 있다. 때로는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소심한 듯하지만 강단 있고 당찬 주인공 치히로, 여러 일을 정정당당하게 해결하며 성장한다. 치히로와는 결이 다른 듯한 치히로의 부모님,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마녀 유바바의 제자이지만 치히로를 돕는 하쿠, 실은 강의 신으로 치히로가 어렸을 때 만난 적이 있다. 돈을 좋아하는 온천장의 주인인 마녀 유바바,  하나뿐인 아이 보를 과잉보호한다.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 유바바와 사이가 좋지 않으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박하게 산다.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 외로움이 많으며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모른다. 온천장의 제일 아래층에서 온천장의 물을 끓이는 일을 하는 가마 할아범, 늘 쉬지 않고 일하는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다. 치히로의 사수가 되어 일을 알려주고 돕는 린, 처음에는 인간인 치히로를 미워했지만 나중에는 가족처럼 대한다.



 모험을 떠나는 성장형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 신분이 공주 혹은 왕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는 평범한 10살 여자 아이다. 공주도 아니고 족장의 딸도 아니다. 나라를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인간 아이가 이상한 세상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어 겪는 모험이다. 일본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중요한 키워드이름이다. 온천장의 주인인 마녀 유바바는 일하지 않는 자는 돼지로 만들어 도살하거나 굴뚝 속의 검댕으로 만들어 평생 어둠 속에서 고통받게 한다. '치히로'도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이름을 대신 받는다. '치히로'라는 이름의 의미는 '천 길의 깊이'. 즉, '끝없는 깊음'라는 뜻이다. 반면 '센'은 숫자 천. 그래서 유바바가 처음에 치히로의 이름을 듣고는 "거한 이름을 가졌구나."라고 말한다. 의미가 담긴 이름을 지우고 숫자를 부여한 행위는 치히로를 존재가 아닌, 언제든지 무엇으로든 대체할 수 있는, 온천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역할 중 하나로 대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하쿠가 기억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름은 '니기하야미 고하쿠누시'이다. 하쿠는 원래 강의 신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강의 신은 용으로 표현된다.) 이름으로 표현되는 '존재의 의미'를 유바바에게 빼앗긴 이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기억도 희미해지고 목적을 잃은 목표만 남는다. 치히로의 부모님은 자신이 인간이었던 것을 완전히 잊었다. 가마 할아버지가 치히로에게 준 편도 기차표는 그가 온천장에 올 때 사용하고 남은 표일 것이다.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잊고 매일 고된 일을 하고 있는 가마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무엇을 위해 유바바에게 왔을까? 가마터에서 일한다고 해서 가마 할아버지인 그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어른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진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치히로의 부모님, 유바바, 그리고 온천장에서 일하는 이들. 소중한 것을 잊고 눈 앞의 욕망만 따르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치히로의 부모님은 눈 앞의 음식에만 몰두하느라 치히로가 사라진 것도 모른다. 유바바는 가오나시가 만들어낸 금을 쌓아놓고는 흐뭇해하느라 하나뿐인 아들 '보'가 사라진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오나시가 금을 만들어 내자 온천장의 직원들은 그의 환심을 사려고 아부한다. 온천장 영업시간도 아닌데 음식을 내오고 춤을 추며 잘 보이려 한다.



 아무도 관심 보이지 않던 가오나시에게 치히로는 인사하고 친절을 베푼다.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가오나시는 치히로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하지만 치히로는 그에게 원하는 것이 없다. 온천장에서 사용하는 비싼 약수가 나오는 표도 린이 가져오라고 시켜서 가오나시의 도움으로 하나만 받았을 뿐이다.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가오나시가 주려고 해도 치히로는 받지 않는다.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금을 준다고 해도 거부하는 치히로가 이상하기만 하다. 욕망을 건드려 원하는 것(재물)을 주고 잡아먹어버리는 가오나시의 전략이 치히로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치히로가 원하는 것은 가오나시가 줄 수 없다. 치히로는 부모님이 무사히 돌아오시고 인간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전에 하쿠를 살려야 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가오나시가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 모른다. 늘 외롭고 공허하다. 끝없는 갈증을 채우려 하지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이용당하기도 하고 폭력적인 방식이 오가기도 한다. 가오나시는 현대인을 대변하는 듯하다. 많은 이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지만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인간은 근본적 외로움과 공허함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그 공허함을 무분별한 관계와 물질로 채우려 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 시기가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과 당장의 충동을 구분하지 못하며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모르는 가오나시를 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매 순간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가오나시는 존재의 의미를 잃은 것이 아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 제니바와 함께 살기로 했으니 아마도 그곳에서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도 알게 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미를 찾을 것이라 믿는다.



 이 작품에 두 용이 나온다. 하나는 오물 신인 줄 알았던 강 신. 또 하나는 하쿠로 알고 있던 ‘니기하야미 고하쿠누시’이다. 강 신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똥 내를 풀풀 풍기며 무거워 보이는 몸을 땅에 끌며 온천장에 들어오는 장면이 정말 압권이다. 갓 지어온 밥도 악취로 인해 폭삭 사그라들 정도, 치히로가 이 온천장에서 일하며 존재감을 처음 드러내는 때이기도 하다. 온천수에 몸을 담근 강 신에게서 오물이 모두 쏟아지고 나자 하얀 용의 몸에 하회탈 같은 얼굴로 산타 할아버지처럼 ‘허 허 허’ 웃으며 가벼운 몸이 되어 날아간다. 강 신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오물은 모두 인간이 만들고 버린 생활용품들이다. 자전거, 고물, 고철 등. 비본질이 제거되니 본질만 남은 존재는 가볍고 자유하다.



 또 다른 강의 신인 하쿠는 인간이 개발하는 바람에 강을 잃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한다. 유바바의 말로는 순진한 용이 욕심이 많아서 자신에게 제자로 삼아달라며 들어왔다고 하지만 하쿠는 강을 잃어 단지 갈 곳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잃어버린 강을 되찾고 싶었는지도. 어린 용 하쿠는 이름을 다시 되찾자 비늘이 벗겨지며 다시 인간형 하쿠가 된다.


어렸을 때 강에 빠진 적이 있었어.
그 강은 이미 메워지고 아파트가 세워졌대.
이제야 기억이 나.
그 강의 이름은 고하쿠.
하쿠, 너의 진짜 이름은 고하쿠 강이야. _치히로

내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고하쿠누시'야!
나도 이제 기억났어.
치히로가 내 안으로 떨어졌던 일을···
넌 물에 빠진 신발을 붙잡으려고 했었어. _하쿠

하쿠가 나를 얕은 곳으로 데려다준 거구나! _치히로

 


 치히로가 이름을 되찾았을 때 별다른 외형의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치히로는 하쿠의 도움을 받아 치히로라는 진짜 이름을 잊지 않도록 계속 의식을 잡고 있었다. 나는 이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존재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 강 신은 이름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치히로의 도움으로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오물을 뱉어내고는 본래의 존재로 회복한다. 그러고 나서 치히로에게 선물을 남긴 것도 ‘쓴 환‘이다. 이것을 먹은 하쿠도 자신을 오염시켰던 유바바의 벌레를 뱉어내고는 본래의 존재로 회복한다. 가오나시도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은 가짜 위안을 이 환을 먹고 모두 게워낸다. 내 존재의 진짜 의미는 무엇이고 그것을 훼손시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면 사전에 차단하거나 나중에라도 제거할 수 있을 테니.



 유바바는 마녀이고 위험한 인물이지만 하나뿐인 아들 보에게는 사랑이 가득한 엄마다. 그 사랑이 왜곡되어 보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로만 보고 있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유바바는 생쥐로 변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황금이라고 생각하고 애지중지하던 것도 제대로 보려고 마음먹으니 흙덩이로 보인다. 아들도 그제야 알아본다. 유바바는 보의 엄마가 아니어도 유바바다.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보를 돌보고 보살피는 순간에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서글프다. 여자 유바바의 삶을 재해석해 보았다. 유바바는 외관상 노산임이 분명하고 보의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생계와 육아를 책임져야 했을 것이다. 부디 유바바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기, 쌍둥이 자매 제니바와 잘 화해하기를, 온천장의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 맺기를 바란다.



 잘 존재하기 위해, 나의 눈을 가리고 존재의 진짜 의미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기 위해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진짜 원하는 것과 충동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2020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혼자서 또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함께 보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삶에서 가장 참된 것은 만남이다.
_마르틴 부버


참된 존재로서의 '나'와 잘 만나고, 소중한 존재 '타인'과도 잘 만나기를.

우리가 온전한 존재로 존재할 수 있기를.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중요한 것을 잊었다면 무엇인가?

* 내 존재를 훼손시키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 '건강한 관계'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 나에게 '회복'은 어떤 의미인가?

* 내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본질'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나는 자유한가?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이유에서인가?

* '잘 존재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내 상태를 비추는 '거울'은 나에게 무엇인가?

* 나를 오염시키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삶에서 느끼는 '갈증'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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