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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Nov 28. 2020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결국은 사랑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18

| 결국은 사랑


인생은 아름다워

감독 : 로베르토 베니니

출연 : 로베르토 베니니(귀도), 니콜레타 브라스키(도라)

개봉 : 1999. 03. 06 / 2016. 04. 13 재개봉


  시골 총각 '귀도'는 대도시 로마에 갓 도착한다. 그리고 우연이 겹쳐 운명이라고 믿게 된 아름다운 여인 '도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도라에게는 정략결혼 상대인 정혼자가 있다. 도라는 정혼자와 잘 맞지 않는다. 생각의 결도 가치관도. 그가 하는 농담이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타민족을 비하하는, 그녀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농담에 웃는 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우연으로,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귀도와 계속 마주치며 결국 도라는 귀도를 사랑하게 된다. 그의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 도라에게 통했다. 도라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도와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들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아들 '조수아'의 다섯 번째 생일날, 집에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유태인인 귀도와 그 핏줄인 조수아를 잡아간다. 유태인인 숙부도. 수용소에 도착한 귀도는 아들 조수아를 위해 거짓말을 시작한다. 이곳은 게임장이며 1,000점을 먼저 모으는 사람은 상품으로 진짜 탱크를 얻게 된다는 것.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수용소에서 귀도와 조수아는 무사할 수 있을까?


 집 안이 난장판이 된 것을 보고 도라는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잡혀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기차 어딘가에 남편과 아들이 있다. 기차가 수용소를 향하는 것도 알고 있다. 수용소가 어떤 곳인지도 안다. 리스트를 훑으며 담당 군인이 당신의 이름은 없다고 말한다. 유태인, 즉 죽을 사람이 적힌 리스트다. 도라를 뚫어져라 보는 군인의 눈은 살기가 느껴지는 *사백안이다. 마치 '그렇게 죽고 싶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렇게 해. 어리석은 여자야.'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덕에 자라면서 외부 환경으로 인한 어떤 고생도 해보지 않았을 도라는 그렇게 죽음의 수용소로 향한다. 유태인들을 짐짝처럼 태우고 떠나는 기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 마치 시체를 태우는 수용소의 소각장 같다.

*사백안 : 사방에서 흰자가 보이는 눈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들은 두 줄로 나뉜다. 노동력이 있다고 판단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 귀도의 숙부는 다른 노인들과 함께 샤워실로 향하는 줄에 선다. 샤워실에서 물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물 대신 독가스가 나오겠지. 수용소에서는 시체 처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샤워실이라고 속여 옷과 장신구를 스스로 벗게 한다. 쓸데없는 난리를 피하기 위해 비누까지 쥐어준다. 옷은 재활용된다. 시계나 귀금속 등은 발견한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다. 시체는 검은 연기가 나오는 굴뚝이 있는 소각장 건물에서 태워진다. 영화에서 잠깐씩 검은 연기가 나오는 굴뚝이 하늘과 함께 *줌인된다.

*줌인 : (zoom in (피사체·장면 등을) 줌 렌즈로 클로즈업해서 잡다


괜찮소?

 숙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을 지나다가 휘청하는 군인을 잡아주며 괜찮은 지 묻는다. 감독은 인간이 인간을 향한 시선이 어떠해야 하는지 숙부를 통해 우리에게 전한다. 영화 초반 귀도가 숙부 집에 도착했을 때,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숙부를 폭행하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도망친다. 도움을 청하지 그랬냐는 귀도의 말에 숙부는 침묵만큼 큰 저항은 없다.라고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닌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폭력의 대물림이 아닌 내 선에서 끝내는 변환자의 모습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연결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악명 높은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쓰기 위해 원고를 되새기며 견뎠다. 원고를 빼앗겼을 때에도 독방에 갇혔을 때에도 군인들이 자신을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엘리시오 숙부의 모습에서도 빅터 프랭클이 발견한 것이 느껴진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그는 인간성을 잃지 않는 반응을 선택한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쥐고 있는 이 앞에서도 그는 고귀한 인간이었다. 아래는 엘리시오 숙부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대사다. 타인을 향한 시선도 자신을 향한 시선도 건강하다.


호텔의 손님들에게 인사할 때에도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고개를 숙이듯이.
손님들에게 우리가 하는 것은 시중이 아닌 봉사다.
봉사는 예술이다.
하나님이 최초의 봉사자였다.

_엘리시오 숙부 <인생은 아름다워>


 감독은 영화 곳곳에 시대를 드러내는 혹은 고발하는 장면을 위트 있게 연출했다. 위 장면은 귀도가 도라를 만나기 위해 꾀를 내는 장면이다. 전날 호텔 손님인 장학사에게 들은 정보를 가지고 도라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장학사 인척 방문한다. 선생님들이 서있는 단상 뒤로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문자가 보인다. 왼쪽부터 LIBRO E MOSCHETTO 책과 소총, DVX 우두머리, FASCISTA PERFETTO 완벽한 파시스트 당원이라고 쓰여있다. 이곳은 초등학교다.


 조수아와 지나던 중 ‘VIETATO L'INGRESSO AGLI EBREI E AI CANI 유태인과 개 출입 금지'라는 공지가 가게 문에 붙어 있는데 조수아에게 너는 무엇을 싫어하냐며 우리 서점에는 ‘고트족과 거미’를 출입 금지하자고 말한다. 그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귀도의 태도가 부럽기도 하고 멋지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패배주의자가 아닌, 인종차별을 당한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가 진심으로 멋졌다. 하지만 이 부분도 귀도가 재치 있게 넘기지만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다. 유태인과 개를 동급으로 보는 시선이다.  


낙관주의는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아주 해로운 이론이다. 이 이론은 삶을 바람직한 상태로 제시하고 행복이 인생의 본질이자 목표인 양 설명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과 기쁨을 누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만약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누구든 자신이 부당하게 고통받는다고 느낄 테고, 심지어는 존재의 균형을 잃게 될 것이다. 노동과 궁핍, 불행과 고통은 그 정점에 있는 죽음과 더불어 인생의 진정한 본질이자 목표다. 그러므로 이 같은 본질에 대항해 삶의 의지로 맞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진정 옳은 방법이다.
_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독일 철학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보여준 염세주의와 페시미즘은 니체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세상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부조리하고 맹목적인 의지다."라는 말을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인물이 있다.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다. 귀도의 친구는 귀도와 대화하는 중에 잠이 든다. 어떻게 대화하면서 잠이 드냐며 놀라는 귀도에게 “쇼펜하우어가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댔어."라며 쇼펜하우어를 전한다. 귀도는 영화 전반에 걸쳐 삶을 긍정하는 낙관 주의자처럼 나온다. 유쾌하고 장난기 많으며 늘 웃는 얼굴이다. 그의 관점은 부정보다는 긍정을 향해있다. 때로는 정신승리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쇼펜하우어의 말과 귀도의 태도를 언뜻 보면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쇼펜하우어는 허무주의자다.


 수용소 안에서 귀도의 말과 행동도 낙관 주의자로 보기에 충분해 보인다. 조수아를 숨기기 위한 말과 행동이 그랬다. 하지만 조수아와 함께 있지 않을 때 그의 표정을 보면 그는 두려움에 차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의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분명 이 상황이 무섭고 끔찍하다. 이 죽음의 골짜기에서 조수아를 어떻게 지키고 도라는 어떻게 찾을 것인지 막막하다. 사실 귀도는 이곳에서 자신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이미 결론 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지독한 현실주의자 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수용소에서 그가 의지할 것은 정말 ‘의지’ 뿐이었을 것이다. 삶의 의지로서만 맞설 수 있는, 벼랑 끝에서 그는 진정한 승리를 이룬다. 마지막 내레이션, 성인이 된 조수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확신한다.


 쇼펜하우어는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고통의 바다에서 의지의 풍랑에 따라 떠밀려 살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일 뿐이라고 했다. 벗어날 길은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예술'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음악을 들을 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귀도는 도라가 머물고 있을 다른 수용소 건물을 향해 창 밖으로 축음기를 돌린다. 결혼 전 오페라 극장에서 도라를 돌아보게 하기 위해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주문처럼 외울 때의 그 장면 그 노래다.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 죽음이 늘 감도는 회색빛 수용소지만 이 순간만큼은 도라와 다른 수용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귀도의 마음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LP 음반을 감옥 내 울려 퍼지도록 하는 장면과도 연결된다. 수감자들이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음악이 흐르는 곳을 향한다. 현실은 암울한 고통이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앤디의 마음이다.


 하지만 예술은 인간에게 영원한 처방전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두 번째 방법, 윤리의 길을 말한다. 인간의 삶이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이유는 각자의 '삶의 의지'가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가 충돌하는 것을 막으려면 보편적인 윤리, 즉 공감이나 동정,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받는 이가 바로 수수께끼에 미친 사람, 레싱 박사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귀도를 레싱 박사가 장교식당으로 빼낸다. 귀도는 생명의 동아줄을 만난 듯한 표정이다. 레싱 박사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여러 번 접선을 시도한 끝에 드디어 귀도와 만난다. 레싱 박사의 용건은 바로 수수께끼였다. 도저히 친구가 낸 수수께끼를 풀 수가 없다며 괴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누가 누구를 돕는단 말이지? 그 순간 귀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천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던, 아는 얼굴인 귀도를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보자마자 레싱 박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보편적인 윤리,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 동정이 결여된 레싱 박사는 아마도 영원히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늘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을 테니.

 <7번 방의 선물>에서 예승이 아빠 류승룡이 사형집행을 받으러 나가는 장면은 <인생은 아름다워>를 향한 오마주다. 슬릿 창을 중간에 둔 두 시선의 마주침, 아빠의 자식을 향한 마음, 사형 집행 전의 상황에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한다. 아빠의 희생을 성인이 되어 깨달은, 그때의 기억을 재해석하는 예승이는 곧 조수아다. 조수아는 삶이 고통과 비극이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을 배웠다.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으로. 삶을 누구보다도 비극적으로 바라본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처방전을 제시한 것이 더 이상 아이러니가 아니다. '귀도의 생과 사'가 그러한 것처럼.


귀도의 인생은 아름답다.

나의 인생도 아름답기를.

그리고 당신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나에게 인생은 어떤 색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아름답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나의 인생이 아름답다면 무엇으로 인함인가?

* 나의 인생이 아름답지 않다면 무엇으로 인함인가?

*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내가 자녀에게 남기고 싶은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중에 정신적인 것은 무엇인가?

* 나에게 삶을 긍정하게 하는 도구가 있다면 무엇인가?

* 나에게 실패 또는 불행을 극복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 나에게 의지는 어떤 의미인가?

* 나에게 관점은 어떤 의미인가?

* 나에게 죽음을 넘어서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힘든 순간에 잠시 피난처가 되는 음악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 싫은 것을 억지로 할 때 몸에서 어떤 반응이 있나?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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